유영하 변호사는 전날 박 전 대통령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며 "서로 분열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 앞에서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정의당 측은 거대 야당이 '미래통합당'을 의미한다며 결국 선거권자들에게 미래통합당 후보자를 지지하고 그 외 정당 후보자들은 지지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정의당의 고발로 박 전 대통령은 사법당국의 판단을 받게 됐지만, 대다수 법조계 인사들은 선거운동보다는 정치 행위로 봐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선거권 유무를 떠나 선거법에서 규정하는 선거운동으로 보기 힘들다는 취지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선거운동은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를 낙선시키거나 당선시키는 행위인데 편지에는 특정 후보자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며 "최근 논란이 된 임미리 교수의 칼럼 사례도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대다수 법조계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80일 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를 배부해서는 안 된다는 선거법 93조 규정도 유 변호사가 공개한 것에 불과해 적용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현직 공무원이라는 '주체'를 제외하고 선거운동 개념만을 놓고 봤을 때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과 비교해 봐도 선거운동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사유 중에는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정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한 내용이 포함됐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공무원 신분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당시 헌재는 이런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선거운동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헌재는 "선거운동의 개념은 '특정한' 또는 적어도 '특정될 수 있는'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특정 정당의 득표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도 그 정당의 추천을 받은 지역구 후보자의 당선을 목표로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도 선거운동의 개념을 충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경우에도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발언을 통해 당선시키려고 하는 정당 후보자가 특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헌재는 "당시 발언이 정당의 후보자가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이런 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이라는 '목적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2004년 4월 15일 총선과 시간상으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 발언은 선거운동을 향한 능동적 요소와 계획적 요소를 인정할 수 없다"며 "선거운동의 성격을 인정할 정도로 상당한 목적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 법조계 인사는 "박 전 대통령보다 구체적인 당시 발언도 헌법재판소가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았다"며 "선거운동으로 공직선거법에 위반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정치 행위로 보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각종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처지를 감안할 때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준엄하게 비판하는 게 맞다"며 "형사고발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