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노동자 안전대책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이 생기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KF94 마스크 등 방역 성능이 좋은 마스크를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반면, 같은 직장에서 일하더라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는 외면당하는 일이 울산에서 발생했다.
전국금속노조 산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 김현제씨는 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사로부터 마스크 한 장 받지 못했다"며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김씨에 따르면 지난 2일까지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에 소속된 28개 하청업체 전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1200여명에게 코로나19와 관련해 마스크가 거의 지급되지 않았다. 자신도 하청업체 관리자로부터 받은 방한대(면마스크) 1개가 전부였다고 김씨는 밝혔다.
특히, 지난달 28일 현대차 울산2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노동자들의 감염 우려는 더 커졌지만 정규직은 마스크를 지급받은 반면 비정규직은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김씨는 "확진자가 나온 뒤 즉각 생산이 중단되고 모두 퇴근하는 와중에도 정규직들은 KF94 마스크를 받아 갔는데, 비정규직은 마스크를 나눠주기는커녕 확진자 발생 사실도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확진자가 나온 2공장 폐쇄 후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현대차 노사와 질본이 '선별진료'를 진행했다"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제외됐다"며 "하청 노동자는 코로나에 걸려도 된다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사업장 코로나 대응지침은 파견, 하청 노동자들도 동일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공장에 질본 직원이 상주하고 있지만, 이런 지침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규직은 KF94 마스크나 방진 마스크 등을 받고, 비정규직은 면마스크를 빨아 쓰라고 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건강권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각 업체에 소속된 직원들로, 현대차에서 마스크를 지급할 법적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코로나19 이후 (하청) 업체 측에서 마스크가 없으니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보유한 마스크(부직포)를 급하게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의 '건강권 차별' 사례는 수두룩하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달 초 정규직인 집배원에게 마스크를 먼저 지급하고, 사흘 뒤 비정규직 택배노동자에게 지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에 직접고용된 집배원과 달리 택배노동자는 우체국 물류지원단과 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비정규직 교사가 운영하는 돌봄교실에 먼저 지급한 체온계를 "개학 후 각 학급에 지급해야 할 물품이다"면서 회수하는 일이 있었다. 일반 교사들은 재택 근무하는 동안 비정규 돌봄교사들이 출근하는 일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하청이나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이런 차별에 대한 몰감각은 감염병 예방이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여전하다"며 "어느 사업장이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직원 전체에 대한 강력한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