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 후 퇴원한 환자 A씨는 치료 당시 상황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느낌"이라고 묘사했다.
지난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에 실린 논문 '2015년 한국 메르스 사태 1년 이후 생존자들의 정신과적 문제'에 따르면 메르스 판정 후 완치된 환자 63명 중 40명(63.5%)이 완치 1년 후까지도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메르스 생존자들의 이런 어려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에게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메르스 생존자들이 보인 정신과적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수면 문제, 불안, 우울, 자살성, 공격성, 중독 등 다양했다.
연구진은 "메르스 환자의 경우 일반적인 중환자실 환경보다 더욱 고립된 비인간적 환경(의료진의 낯선 보호장구, 가족 면회 차단 등)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공포와 죽음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질병 자체에 대한 공포에 더해 사회적 시선이 이들의 증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따랐다.
메르스 환자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해자임에도 자신들을 '전파자' 또는 '가해자'로 보는 시선과 편견이 이들의 정서적 어려움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연구진은 외부와 격리돼 치료받는 코로나19 확진자들도 메르스 생존자들과 유사한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29일 "메르스 연구 경험을 참고할 때 이번 코로나19 확진자들도 신종 감염병이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완치 후에도 불안, 우울, 트라우마, 고립감, 만성 피로 등과 같은 정신과 질환을 앓을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감염 우려가 큰 만큼 의료진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환자와 접촉을 최소화한 상태로 치료에 참여하는 데다, 확진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비난 대상이 되는 등 사회적 편견이 메르스 사태 때와 비교해 절대 약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의 경우 지역사회 감염이 급속히 확산하는 점을 고려하면 확진자뿐 아니라 비확진자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메르스 때보다 광범위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과장은 "메르스는 병원 중심 감염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코로나19는 지역사회 감염으로 가고 있어 일반인들의 불안 수준과 심리적 위축이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르스 생존자 등에 따르면 당시 격리자에 대한 지역사회의 노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며 "격리자가 많아 지역 전체가 공포와 감시 분위기였던 곳에서도 관·지역 언론·단체 등이 노력하면서 격려하는 분위기로 반전됐던 경험도 보고돼 참조할 만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