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정준영 부장판사에 대해 기피신청을 냈다. 지난해 10월 정 부장판사가 첫 재판에서 삼성에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언급하고 올해 1월 양형 조건으로 고려하겠다고 했을 때도 꺼내지 않았던 카드였다.
26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특검은 "최후의 보루로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4일 언론에 공개한 기피신청 취지문에서는 "정 부장판사가 일관성을 잃은 채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이번 파기환송심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현재 양측은 법리가 아닌 양형에 대해서만 다투고 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대법원에 재상고하기 어렵다. 형사소송법상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는 사형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았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2심에서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다른 국정농단 사건보다 특검이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른 이유다. 정 부장판사는 첫 재판부터 삼성에 치료사법적 관점에서 유리한 양형조건을 먼저 제시해 논란이 됐지만 특검은 바로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양형 요소들도 같이 심리해달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의 수사자료를 증거로 신청했다. 지난달 17일 공판에서 특검이 추가로 신청한 양형가중사유 23개가 모두 기각되자 그 중 핵심 증거 8개만이라도 채택해달라고 추가 이의신청을 냈다.
재판부가 이달 14일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을 검토할 전문심리위원 선정을 논의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준비기일을 취소하고 정식 공판을 열어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조건으로 설정하는 것을 '전제'하고 심리위원부터 선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판에서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특검 의견과 재벌체제 혁신에 대한 변호인 측 의견을 듣고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의신청을 기각하기 전날인 지난 19일 정준영 부장판사는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7년형과 법정구속을 명해 주목받았다. 지난해 정 부장판사는 이 전 대통령을 보석으로 석방하고 재판에서도 피고인 측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 이 전 대통령 측의 기대가 컸지만 판결은 엄중했던 셈이다.
이에 특검 등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 재판에서도 정 부장판사가 기존 스타일대로 결국은 균형있는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했다. 정식 양형요소도 아닌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감형사유로 보겠다고 고집한다면, 특검의 가중양형요소도 일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결국 증거신청이 기각되면서 특검은 기존 자료들만으로, 이 부회장은 삼성에 만든 준법감시위원회라는 패를 쥐고 양형 다툼을 하게 된 상황이다.
특검은 "기각 결정문에는 특검이 제시한 양형 증거는 심리 필요성이 없다는 기존 재판부의 입장만 들어가 있었다"며 "결론이 뻔한 상황에서 더 이상 끌려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이 형사소송법상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해 기피가 필요한지는 다른 재판부에서 판단하게 된다. 기피신청이 기각되면 특검은 대법원에 다시 판단해달라고 항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