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받아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에서 이름을 빌려와 '자객 공천'이라고 부른다. 종합적인 경쟁력보다는 상대 후보와 각을 세울 독특한 컨셉이 강조된다.
야권 대표주자인 미래통합당은 이번 4·15 총선에 내보낼 후보 가운데 일부를 이런 방식으로 고르고 있다. 이른바 친문(친 문재인) 후보들, 특히 청와대 출신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이 대상이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지난 23일 발표한 수도권 지역 공천 확정자 명단에는 황교안 대표, 김용태 의원(3선),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 김웅 전 부장검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새롭게 눈에 띄는 인사는 김태우 전 수사관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내리 3선을 했던 서울 강서을 지역구에 전략 공천됐다. 이곳에서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과 맞붙는다.
김 전 수사관은 24일 출마 선언 회견에서 "지난 2018년 7월 청와대는 드루킹이 특검에 제출했다는 USB 내용을 알아보라고 특감반에 지시했었다"면서 "궁금해하는 자가 범인 아니겠냐. 그걸 밝혀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그가 현재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악영향이 우려되는 측면도 있지만, 공익제보자 성격까지 함께 고려됐다는 게 공관위 측 설명이다.
공관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대진표를 짤 때 김 전 수사관은 물론 상대 후보도 당시 청와대 결재라인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했다"면서 "최전선에서 문재인 정부 공작정치 문제점을 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수사관은 앞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재수 전 부산시 정무부시장 감찰무마,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금품수수 등의 의혹에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고 고발한 당사자다. 다만 KT 임원에게 골프 접대를 받고 공무원 비위 사건 수사팀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 등은 검찰 기소 단계에서 빠졌다.
김웅 전 부장검사는 서울 송파갑에 단수후보로 추천됐다.
이 지역 민주당 후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문미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과 조재희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이 공천을 신청한 상태다. 문 전 차관의 경우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영입한 인사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냈었다.
베스트셀러 '검사내전' 작가로 알려진 김 전 부장검사는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에 각을 세우는 데 최전선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앞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등 검찰개혁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그는 미래통합당 설립 전 새로운보수당 입당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입당식에서는 "국민에게는 불리하고 불편하고 부당한 법이 왜 개혁으로 둔갑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고 반칙과 특권이 감성팔이 선동을 만나 개혁이 되고 구미호처럼 공정과 정의로 둔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었다.
통합당은 이같은 자객공천 전략이 해당 지역 상대 후보에 대한 저격을 넘어 전체 선거판의 분위기를 '반문' 정서로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용태 의원은 통화에서 "윤 전 실장은 문 대통령 복심에 86 운동권을 대표하는 총대장이지만 제가 보기엔 국정운영 파탄의 주범"이라며 "종로와 구로을의 승패가 서울 전체와 직결되고 총선 성패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윤 전 실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일본 정치에서 나온 자객 공천이라는 말은 말 자체가 살벌하고 일본 자민당에서도 그런 말을 쓰지 말자고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통합당은 용어부터 품격 있게 썼으면 좋겠다. 다만 낮은 자세로 지역 유권자를 만나 얘기를 듣겠다"고 말했다.
자객공천의 성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와 연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 정권을 사람들이 계속 지지한다면 자객공천은 의미를 잃을 수 있지만 그 분위기가 부정적인 흐름이라면 효과를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