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체크] 문 대통령은 과연 '한중 운명공동체'라 말했나

코로나 사태 中 '눈치보기' 논란 계기로 文 과거 발언 재조명
'운명적 동반자' 등 몇차례 비슷한 발언…'친중노선' 단정은 무리
한중일, 아세안과도 '운명공동체' 강조…일반적 외교철학 가까워

(사진=연합뉴스)
중국에서 유입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우리나라도 방역 초비상이 걸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한중 운명공동체'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과거 중국 방문 때 했다고 알려진 이 발언은 현 정부가 미국, 일본과 달리 중국 앞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의 핵심 근거가 돼왔다.

보수층을 비롯한 일각에선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정부가 중국인 입국 제한을 확대하지 않는 것도 중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창수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21일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날 통화 내용을 겨냥해 '한중 운명공동체' 발언을 기정사실화 하며 '저자세 외교'라고 논평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구애 발언'이라고 폄하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에 대해 '시 황제의 노예가 돼도 좋은가'라는 도발적 제목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한중 운명공동체' 발언은 엄밀히 따져보면 왜곡되거나 부풀려졌다.

물론 비슷한 표현은 몇 차례 있었다. 처음은 2017년 12월 13일 중국 국빈 방문시 한중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나왔다.

주한중국대사.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크게 보면 양국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번영해 나가는 운명적 동반자 또는 운명 공동체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발언은 양국 경제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생·협력 관계임을 강조하는 가운데 나왔다. 양국 경제인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경제 분야에 국한한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날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는 '운명 공동체'는 빼고 '운명적 동반자'라고만 했다. 경제 뿐 아니라 군사·안보 등 포괄적 양국관계를 감안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양국이 최근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듯 당시 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첨예한 갈등 상황이었다. '동반자'는 몰라도 '공동체'라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셈이다.


문 대통령의 운명 공동체 발언은 지난해 12월 24일 다시 등장한다.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때 "경제적으로도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며 경제 쪽에 보다 확실히 방점을 찍었다. 대상도 중국 뿐 아니라 한중일 3국으로 넓혔다.

분업과 협업체계, 경제협력을 강조한 데에서 보듯 아베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 대통령의 운명 공동체론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으로까지 확장 시도됐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아세안은 한국의 영원한 친구이며 운명공동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아가 세계의 미래"라며 "한국은 아세안과 함께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드는 데에도 항상 함께할 것"이라고 러브콜을 던졌다.

결국 문 대통령의 운명 공동체론은 중국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모든 나라를 상대로 호혜평등의 원칙하에 추구하고자 하는 외교 철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총선 국면에서 야당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며 외교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국익이 결부된 사안에선 초당적 접근이 필요하고, 최소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와 관련,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중 양국은 운명 공동체라며 '역지사지'를 거론한 것은 한국 내 상황을 교묘히 이용한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에 대해 역지사지의 태도를 언급한 것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은 당시 운명 공동체가 아니라 운명적 동반자라 표현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 내에서는 운명 공동체 발언이 기정사실화되자 슬쩍 묻어가는 식의 편승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싱 대사가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연계해서 '운명 공동체'라고 한 번 툭 던진 것 같다"며 "이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전통적 입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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