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직후 각 사건 유가족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 "잔혹한 범행…평생 사회로부터 격리"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는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정봉기 재판장은 "천륜인 아들과 친아버지인 피해자의 관계를 단절하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유가족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깊은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나아가 비극적인 범행으로 어린 아들이 향후 성장 과정에서 마주할 충격과 고통 역시 쉽게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이 거짓말로 일관하며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태도도 비판했다.
정 재판장은 "피고인은 피해자와 그 유족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하자 이에 저항하다가 살해했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범행을 부인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에 대한 인간적 연민이나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고 직후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고유정은 "할 말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한 뒤 법정을 벗어났다.
◇ 전남편 사건 공소사실 모두 유죄 판단
이날 재판부는 전남편 살인사건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먼저 '전남편 사건'의 경우 고유정이 "계획범행이 아닌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보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피해자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이 검출됐고, 사전에 청소도구, 흉기 등을 구매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고유정이 부인했던 '뼈 강도' '졸피뎀' '혈흔 지우는 법' 등을 검색한 사실도 범행 직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계획범행 증거로 인정됐다.
반면 의붓아들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을 지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이어서 재판부는 간접증거의 증명력을 엄격하게 따졌다.
먼저 의붓아들 사건 주요 증거인 '현 남편 모발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감정 결과'에 대해서 "감정 결과만으로 고유정이 사건 전날 현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였다고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약‧독물 검사 시 언제 수면제를 먹었는지 특정할 수 있도록 머리카락 1㎝ 단위로 분절 검사를 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감정 결과만으로 범행 직전에 현 남편이 수면제를 먹었는지, 범행 이후에 먹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건 당일 새벽 고유정이 방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사용한 정황도 "평소 고유정이 새벽에 빈번하게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 범행을 위해 이례적으로 깨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유정이 현 남편과의 단란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검찰이 주장한 범행 동기도 인정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메시지나 메모 내용을 봐도 고유정이 피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고, 오히려 현 남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선 피해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점에서 범행 동기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얼마나 더 참혹하게 죽여야 사형 선고하나"
선고 직후 각 사건 피해자 유가족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고유정 엄벌을 촉구하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촉구했지만, 재판부가 그보다 낮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특히 무죄가 나온 의붓아들 사건 피해자 아버지 홍모(38)씨는 재판이 끝난 뒤에도 오열하며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피해자 변호인의 부축을 받고 나서야 겨우 법정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홍 씨는 기자들과 만나 "이제 열흘 뒤면 우리 아이가 사망한 지 딱 1년이 된다. 고유정이 무죄라면 저는 아빠로서 제 아기 죽음의 원인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는가. 제 아기 죽음의 진실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재판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고유정은 지난해 5월 25일 저녁 제주시 한 펜션에서 전남편(36)을 흉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은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지난해 3월 2일 새벽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엎드려 자는 의붓아들(5)의 뒤통수를 10여 분간 눌러 살해한 혐의로도 재판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