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번 환자는 왜 청도로 향했나…신천지 가설 '셋'

'슈퍼 전파' 중심 31번 확진자 청도 방문력 확인
중대본, 대남병원 확진자와 신천지 연관성 파악 중
청도 방문 세 가지 가설…봉사활동·성지순례·구역관리

(사진=연합뉴스)
대구·경북 지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슈퍼 전파' 사태의 중심에 있는 31번째 확진자가 이달 초 경북 청도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방문 목적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청도에 있는 대남병원에서 15명이 무더기로 확진되고 그 중 1명이 사망한 만큼 31번 환자와의 연관성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0일 휴대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31번 확진자의 청도 방문력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세부적인 동선과 방문 일시 등은 면담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은경 본부장은 "어제 조사를 하면서 31번 환자의 동선이 확인됐고 신천지 교회가 청도군하고의 연관성이 많은 연고가 있는 그런 지역이라 거기에도 그런 시설이 있다는 것을 확인,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31번 환자가 지난 6일 대구에서 회사에 출근하고 다음날 병원에 입원한 이후의 행적만 알려졌던 터라 갑자기 드러난 '청도행(行)'을 두고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마침 청도 대남병원에서는 전날 2명에 이어 이날 13명의 확진자가 추가됐다.

CBS노컷뉴스는 대구 신천지에서 과거 활동했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취재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31번 환자의 청도 방문 목적을 따져봤다. 경우의 수는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봉사활동이다. 이날 청도군에 따르면 지난 11일 신천지 봉사자 5명이 풍각면 한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 25명에게 이발 봉사를 했다. 이 봉사자 5명 중에 문제의 31번 확진자가 있었는지, 또한 다른 확진자들도 포함됐는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신천지 신도 A씨는 "이만희 총회장 고향이 청도여서 대구 신도들이 봉사하러 자주 간다"며 "독거 노인을 돕거나 연탄 나르기, 벽화 그리기, 미용 봉사 같은 걸 한다. 이외에도 이만희 총회장 집에 가서 잡초를 뽑거나 풀 베기 등 집안 관리를 도울 때도 있다"고 증언했다.


신천지 장년회 소속이었다가 2년 전 탈퇴했다는 B씨도 "청도로 봉사활동을 가는 건 일상적이었다. 자주 공지가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앙심이 깊은 신도들은 이만희 총회장이 태어난 성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참석한다"라고 덧붙였다.

20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대구 신천지 인근에서 남구청 보건소 관계자들이 방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가능성은 '성지순례'다. 경북 청도는 신천지 3대 성지 중 하나다. 신천지 신도들은 이만희 교주가 태어난 경북 청도, 이만희 교주가 처음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계룡산 국사봉, 신천지의 발원지인 경기 과천 이렇게 세 곳을 기념한다.

A씨는 "신천지를 믿는 신도라면 누구나 청도를 가고 싶어한다. 전도 시상식에 일등 팀 선물로 '청도 탐방권'을 내걸 정도"라고 증언했다. B씨도 "성지가 맞다"며 "저도 신앙이 깊을 때 자의적으로 간 적이 있다. 성지순례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신도들이 성지순례를 도는 장소는 주로 '만남의 쉼터'다. 교주 이만희의 '만'과, 지금은 탈퇴했지만 한때 내연녀로 알려진 김남희의 '남'을 합쳐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정 본부장이 언급한 '청도군 내 신천지 관련 시설'도 이곳으로 추측된다.

B씨는 "만남의 쉼터로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다"며 "만남의 쉼터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실적을 많이 낸 사람, 그러니까 포교를 많이 한 사람이 초대를 받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신천지는 이곳에서 하늘의 영인을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저는 초대받지 못한 신도라 주변만 떠돌다 온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31번 확진자가 성지순례를 갔다면, 포교를 많이 해 신천지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신도라고 볼 수 있다.

31번 확진자가 구역원이나 포교 대상을 만나기 위해 무더기 확진자가 발생한 대남병원에 직접 갔을 가능성도 있다. 신천지는 과거 정신질환자나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 취약 계층은 포교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이 원칙이 무너진 지는 오래라고 한다.

과거 10년 이상 신천지에서 포교 담당이었던 C씨는 "31번 확진자가 교인 관리를 위해 청도 대남병원에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C씨에 따르면 신천지는 구역장이란 직책을 두고 지역 곳곳의 신자들을 관리한다. 구역장들은 신도가 신천지에서 벗어나려는 낌새가 보이면 구역원을 찾아 다니며 집중 관리한다.

C씨는 포교 대상이 대남병원에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어 "신천지는 새로운 신도의 경우 포교자의 교회를 따라가는 관례가 있다"며 "31번 확진자가 새로운 신도를 데려오기 위해 청도까지 갔다는 가설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31번 환자는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사흘이 지나도록 청도 방문과 관련해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보건당국이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추적해 청도행을 확인한 이후에도 면담조사에 대체로 비협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하루에만 대구·경북 지역에서 51명이 무더기로 확진된 상황. '슈퍼전파'에 따른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됐지만 방역당국은 아직 1차 감염원도 특정하지 못했다. 31번 환자를 포함한 초기 신천지 확진자들의 협조가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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