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패소' 철퇴에도 SK "아직 안 끝났다"…노림수는?

'영업비밀 침해'로 다투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
LG "SK가 증거인멸했다"며 조기패소 요구
14일 美국제무역위, '조기패소' 예비 결정
LG "승기 잡아" SK "이의 제기, 안 끝났다"
SK, ①美공익 강조 전략, ②합의 투트랙으로 나설듯
"SK 패소 시 美 공장 투자 및 고용효과 사라질 것"
'삼성-애플 소송'에서도 애플 '공익성' 내세워 뒤집어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배터리 핵심 기술을 탈취당했다며 소송을 낸 LG화학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를 인정해 '조기패소' 예비 결정을 내리면서 배터리 전쟁의 흐름이 LG화학으로 넘어갔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판결에 불복하는 '이의신청'은 물론 미국 내 '퍼블릭 인터레스트(공익)'를 강조해 상황을 뒤집을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해 미국에 세운 생산공장이 중단되면 이는 곧 미국 공익 침해로 이어져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삼성과 애플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애플은 이 같은 미국 내 공익성을 강조해 기사회생한 바 있다.

◇ 끝내 '조기패소' 받아낸 LG화학…승기 잡았다

SK이노베이션과 영업비밀 침해로 소송을 벌이던 LG화학은 지난해 11월, "소송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 법정 모독 행위가 나타났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조기패소' 판결을 요구했다.

당시 LG화학은 증거 자료로 SK이노베이션의 '2019년 4월 30일 사내 메일'을 공개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이뤄지고 있던 지난해 11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조직적인 증거인멸에 나섰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조기패소 판결을 요청했다. 이에 국제무역위원회는 LG화학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기패소 예비 결정을 내렸다.(사진=LG화학)

공개된 사내 메일에는 '[긴급] LG화학 소송 건 관련'이란 제목으로 "각자 PC, 보관 메일함, 팀 룸에 경쟁사 관련 자료는 모두 삭제 바랍니다. ASAP 특히 SKBA는 더욱 세심히 봐 주세요. PC 검열 및 압류 들어 올 수도 있으니.. 본 메일도 조치 후 삭제 바랍니다"고 기재됐다.

ASAP는 '가능하면 빨리(as soon as possible)'의 영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며 SKBA는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을 지칭한다.

결국 LG화학의 조기패소 요구에 '증거 보존'을 제1원칙으로 하는 국제무역위원회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 인멸 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이달 14일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렸다.

이날 내려진 결정은 국제무역위원회 행정판사가 내린 '예비 결정'으로 아직 국제무역위 위원회의 '최종 결정(Final Determination)'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최종 결정은 올해 10월 5일로 예정됐지만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수십 년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예비 결정의 내용이 최종 결정에서 바뀐 적은 전무했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도 예비결정이 그대로 유지돼 최종 결정이 내려진 비율이 약 90%에 이른다.

이러한 이유로 LG화학이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10월에 예정된 최종 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이 최종 패소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등 배터리 제품은 미국 내 수입과 판매가 금지된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소송의 본질은 30여 년 동안 축적한 LG화학의 소중한 지식재산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식재산권 창출 및 보호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SK "미국 내 공익 강조할 것"… '삼성-애플' 소송 보니

국제무역위원회의 조기패소 예비 결정에 SK이노베이션은 즉각 '유감' 입장을 나타내고 이의제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아직 국제무역위원회의 결정문을 받지 못했다"며 "이달 18일쯤 받을 것으로 보이며 이를 우선적으로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의제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기패소 판결이 나왔지만 SK이노베이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우선 SK이노베이션은 10월에 예정된 최종 결정 때까지 '미국 내 퍼블릭 인터레스트(공익성)'를 강조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생산 공장. 내년 완공되며 2022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 최종적으로 패소할 경우 미국 내 공익성이 침해받을 것이란 주장이다.

국제무역위원회의 판결로 SK이노베이션의 제품 판매가 막힐 경우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州)에 세우고 있는 배터리 생산 공장 등이 무용지물이 돼 결국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와 추가 투자 등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진행된 삼성과 애플의 '3G 이동통신 특허침해 소송'에서도 국제무역위원회는 애플의 특허침해를 인정해 '미국 내 수입금지'를 명령, 삼성의 손을 들어줬지만 거부권을 가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내 공익성이 저해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공장 조감도.

SK이노베이션은 이와 함께 LG화학과의 합의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 간 배터리 산업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송이 LG와 SK 모두에게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와 SK는 이번 영업비밀 침해 소송 외에도 특허 침해, 손해 배상 등 총 6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각각 3건씩 주고받은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갈등은 어쨌든 봉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LG화학은 선의의 경쟁사이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도 합의를 위한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소송의 본질은 당사의 소중한 지식재산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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