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당. 이름에서 감이 좀 오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이번 총선에 쓰려고 따로 만든 신개념 정당입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고 하죠. 지지자들에게 지역구는 자신들을 뽑더라도 비례대표 정당 투표는 그쪽에 하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합당을 하고요. 그러면 지난해 선거법 개정으로 큰 정당에 불리하고 작은 정당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준연동형 비례제는 무력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익숙한 이름은 '비례한국당'입니다. 언론이 그렇게 불렀고, 당초 추진했던 당명도 그거였거든요.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퇴짜 놨죠. '비례'라는 단어가 별다른 가치를 담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새로 들고나온 이름이 바로 미래한국당입니다. 이번엔 좀 그럴듯해 보이시나요. 미래나 비례나 발음은 비슷합니다.
전략은 최근 구체화되는 모습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의원들을 불러 미래한국당에 보내고 있습니다. 한선교(61), 김성찬(66), 조훈현(67) 의원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들어본 이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름도 있으실 겁니다.
먼저 한선교 의원. 맞아요. 방송인 정은아씨와 함께 '좋은 아침' 진행했던 전직 아나운서예요. 국회의원만 4차례나 지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께 죄송하다"는 눈물의 불출마 선언 한 달 만에 미래한국당 대표로 당당히 돌아왔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가 당내에서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김성찬 의원은 해군 참모총장 출신 재선 의원입니다. 그리고 조훈현. 한국 최초의 바둑 9단입니다. 이세돌 9단 이전에 이창호 9단이 있었죠. 이창호 9단의 스승이 바로 조훈현 의원입니다. 이들 모두 당에 헌신한다는 명분을 들었으나 뒷맛은 씁니다. 위장전입, 꼼수잖아요.
다음으로 이적한 건 이종명(61) 의원이었습니다. 지난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불러 빈축을 샀던 군 출신 비례대표 의원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당이랑 시민단체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한국당이 이 의원을 제명하겠다고 결정한 게 1년이나 됐는데 그동안 뭉개더니 왜 이제야 조치했냐는 겁니다.
정운천(66) 의원도 합류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했던 인물이죠. 새로운보수당 소속으로 보수야권 통합 실무를 맡다가 돌연 미래한국당 최고위원 자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지금 '젊음'을 컨셉으로 내세웠던 그 정당이 맞나요? 왠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일까요? 미래한국당 현역 의원 5명은 모두 환갑을 넘겼네요. 평균 나이 만 64.2세입니다.
미래한국당은 이런 방식으로 현역 5명을 모았습니다. 덕분에 이번에 국고보조금 5억원을 받았습니다. 법이 그렇대요. 분기별 보조금이 지급될 때 의원이 4명이면 2억원대, 5명이면 5억원대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정운천 의원 이적을 두고 '3억원짜리 트레이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건 이 때문입니다.
추가 충원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당은 '버럭'으로 유명한 한국당 여상규 의원, 코레일 사장 출신 최연혜 의원 등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숫자를 많이 모으면 돈도 돈이지만 선거에서 기호를 윗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유세 때 한 손으로 '브이'를 나타내 자유한국당 기호 2번을 강조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미래한국당 기호를 펼치겠다는 계획입니다. 물론 선거법상 가능한지는 따져 봐야 할 일입니다.
또 이르면 이번 주부터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심사합니다. 앞서 한국당에서 비례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들은 탈당 후 이곳에 입당하겠죠. 총선 직전 공개됐던 영입 인재들은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적을 옮겨야겠네요. 보수통합이 성사된다고 가정하면 새보수당, 전진당 출신 인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새보수당이 얼마 전 야심차게 내놓은 베스트셀러 '검사내전' 저자 김웅 전 부장검사도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까요. "한국당에서 보낸 문자메시지는 읽씹했다(읽었지만 무시)"고 말했던 터라 행보가 더 주목됩니다.
심사는 투명하게 될까요? 혹시 한국당 위성정당인 만큼 황교안 지도부 입김이 반영되진 않을까요. 물론 이제 노골적으로 그럴 순 없을 겁니다. 얼마 전 선관위가 비례대표 공천을 특정인이 마음대로 주무르면 안 된다는 방침을 내렸거든요. 이것도 법이 그렇대요. 위성정당 운영과 후보 이적 등을 놓고 민주당이 한선교 대표를 고발한 것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미래한국당은 선거인단을 꾸려 형식적 요건을 어느 정도 갖추겠다는 방침입니다. 그러나 뒤로는 입맛에 맞는, 혹은 영입 인재 등 미리 찍어놨던 후보를 배치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궁리할 수밖에 없겠죠. 이 대목에서 '짜고 치는' 2차 꼼수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치권에선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미래한국당 이적 제의를 받았던 한 한국당 의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라는 이름을 달아놓고 친박 4선 한선교 의원을 대표로 앉혔다. 한국당이랑 도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울러 민주당과 다른 야당들은 "선거를 개그콘서트로 만드냐"는 등 맹비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거의 매일 비판 논평을 내고 있습니다. 당 등록을 허용한 선관위에도 "이번 결정은 흑역사"라며 재고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흥분하는 기저에는 두려움이 깔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미래한국당 측에서는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범여권이 4+1 협의체를 동원해 선거법을 강행했으니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위성정당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입니다. 눈에는 눈, 꼼수에 꼼수로 대응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범여권은 뭐고, 4+1은 또 뭐냐고요? 정·알·못 시리즈 1편에 쉽게 설명해뒀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2019.12.22 CBS노컷뉴스 : 요즘 국회 왜 싸울까…'정·알·못'을 위한 쉬운 뉴스]
정치권에서는 미래한국당이 총선에서 25석쯤 따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단지 한국당 측의 기대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민주당에서도 그런 예측을 담은 내부 문건을 작성했다고 하니 위협적인 건 사실인가 봅니다.
직접 한 번 따져볼까요? 자, 이번 선거에 적용될 선거법에 따르면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17석은 기존 방식처럼 정당 득표율대로 각 당에 분배됩니다. 병립형이라고 하죠. 그리고 나머지 30석은 연동형 비례제가 적용됩니다. 지난 총선 득표율이나 최근 지지율을 거칠게 대입하면 민주당과 한국당은 각각 병립형 17석 가운데 6석 정도씩 얻을 수 있겠습니다.
변수는 연동형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 없이 추가 의석을 내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민주당 득표율을 다른 정당이 나눠 갖는다고 하면 미래한국당이 30석 가운데 15석 정도는 확보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나머지 15석을 작은 정당들이 나눠 갖고요. 이 결과를 합하면 미래한국당이 21석, 민주당은 7석밖에 차지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작은 정당 상당수가 봉쇄조항에 걸려 의석을 갖지 못한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득표율 3% 문턱을 넘지 못하면 비례 의석을 받지 못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거든요. 여기에 한국당은 요즘 다른 보수정당, 시민사회와 통합을 준비 중입니다. 통합의 폭을 더 넓히거나 한국당이 자체 비례대표 후보를 내게 된다면 4석 정도는 더 얻을 수 있다는 게 낙관의 근거입니다. 반면 실제 투표장에서는 한국당 표가 미래한국당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국민의당 약진이나 호남계 합당이라는 반전 변수도 있습니다.
쭉 보시니 어떤가요? 난무하는 꼼수로 인해 선거판이 참 복잡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또 민주당이 미래한국당을 자꾸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댓글 남겨주세요. :-) 물론 결과는 역시 선거가 끝나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