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명지병원 의료진이 대한의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JKMS)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음압병실에서 격리 치료를 받은 환자 중 1명이 우울증, 불면증, 자살 생각과 같은 심각한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했다.
이 환자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귀국한 뒤 서울 강남과 일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고 이게 2차·3차 감염으로 이어졌다. 환자의 이런 행적을 두고 언론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안이한 대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비판을 본 환자는 치료 중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 환자를 치료한 의료진은 기자회견에서 "환자분이 많이 힘들어했고 불안과 스트레스 증상도 심해, 입원 뒤 정신과 협진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정신·심리 안정제도 투여했다"면서 "본인이 먼저 보건소를 찾았고 여기서 검사를 받아 확진됐는데, 마치 숨긴 것처럼 오해받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고 밝혔다.
의료진은 논문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경증 증상인데도 불구하고, 치료 중 음압실에서의 격리가 심리적 증상을 유발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코로나19 환자의 이런 정신과적인 문제는 감염병 사태가 있을 때마다 늘 반복되고 있는 부분이다.
중국 베이징대 연구팀도 국제학술지 랜싯(The Lancet) 최근호(2월 7일)에서 코로나19 사태 중 발생할 수 있는 불안, 우울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의 정신장애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이런 정신장애가 코로나19 확진 환자, 사별을 경험한 사람, 공포감이 컸던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과 의료진에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베이징대학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및 기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정신 건강 핸드북'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5년 전 메르스가 한국을 강타했을 때를 돌아보면 체계적인 심리지원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하다.
메르스가 유행할 당시 보건복지부 심리위기지원단이 메르스 완치자 112명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한 결과를 보면, 완치자 40.2%가 불안감, 슬픔, 우울감 등을 호소했다. 또 37.0%는 피로감·두통·소화불량 등 신체증상과 각각 싸우고 있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보통 감염병이 유입됐을 때 경황이 없다 보면 주로 신체적인 예방과 치료에만 관심을 갖게 되지만, 감염 당사자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는 위축감과 함께 자신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공존한다"면서 "이럴 때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면 정신적인 충격은 그만큼 더 커지고 위험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코로나19 환자가 확진을 받고, 치료에 들어가는 초기 단계부터 심리지원팀이 함께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특히 감염병 치료 중 뉴스나 댓글 등을 보는 데서 비롯되는 두려움과 심리적 위축은 자칫 위험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