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5·18 왜곡' 지만원, 후유증까진 단죄 못했다

수차례 처벌에도 교묘하게 주장 되풀이
'사회적 기억' 훼손, 어떻게 다뤄야 하나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망언으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 받은 지만원씨 (사진이한형 기자)
"'5·18은 북한 특수군이 와서 한 것이다'라고 작년 2월 8일 국회 대강당에서 4시간 동안 설명회를 했는데 경찰에서 10개월 조사하고 무혐의 처분했다."

극우인사 지만원씨는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5·18 명예훼손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후 지지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해당 영상은 지씨와 함께 기소된 손상대씨가 운영하는 한 매체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됐다.

재판부는 "(광주) 피해자들이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는데도 북한군으로 오인 받게 될 상황을 초래했다"며 "의도가 악의적으로 보여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지씨는 이것이 하나의 의견이기 때문에 처벌해선 안된다고 반박한 것이다. "전라도 판사가 쓴 것을 그대로 다 인용을 했다"거나 "판사가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확실히 믿는 인간(이어서 치우친 판결을 했다)"고 북한 특수군 개입 주장의 타당성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앞서 지씨는 이같은 5·18 왜곡 관련 혐의로만 3번이나 재판에 회부됐다. 그 중 2번은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1번은 무죄 판결이 나왔다.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법리적 문제 때문이었다.

이번 재판부는 그간 지씨가 5·18 등 명예훼손 범죄로 수차례 처벌받은 점을 고려해 실형을 택했다. 그럼에도 지씨의 발언이 5·18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점과 지씨의 고령 등을 사유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앞선 3번의 재판에서도 비슷한 사유로 집행유예나 2심에서의 감형이 이뤄졌다. 그러나 지씨가 약 20년간 자신의 홈페이지와 출판, 언론, 공적 장소 발화 등을 통해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법정 앞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게 되면서 사정은 조금 달라진 상황이다.

지씨의 말대로 지난해 2월 국회에서는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라는 이름을 건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은 "5·18이 논리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란 것을 밝혀내야 한다"며 지씨 주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같은 당의 김진태 의원과 김순례 의원도 가담했다.

현재 한국에는 이른바 '역사부정죄'가 없다. 따라서 지씨나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처벌하려면 형법상 '명예에 관한 죄'를 적용해야 한다.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모두 개인이 당한 피해에 관한 것이어서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다. 지난해 12월 경찰에서 의원들과 지씨를 무혐의로 본 것 역시 이 죄들의 구성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도 지씨 주장을 기정사실로 짜깁기한 게시물이나 유튜브 동영상이 수없이 떠돌고 있지만 처벌하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종편 방송사에서는 지씨 주장을 토대로 한 출연자의 말이 여과 없이 방송되기도 했다. 지씨 역시 누군가를 타깃으로 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의견'일 뿐이라며 법망을 피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때 5·18특별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 등을 통해 역사부정 자체를 처벌하려는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되기도 했다. 해당 법안들은 대체로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 '아우슈비츠 거짓말법'이라는 이름으로 제노사이드(대량학살범죄)에 대한 부정을 처벌하는 유럽 국가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역사부정' 자체를 형벌로 다스릴 수 있는지를 두고도 학자들 간의 의견이 다소 갈린다. 지난해 2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제의 발언을 한 후 긴급하게 마련된 대책 토론회에서 건국대 한상희 교수는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며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역사적 진실 그 자체를 다투기 위한 왜곡이나 부정이 아니라 지지자 결집을 위해 지역주의나 반공주의, 혐오를 섞은 것이어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제주대 이소영 교수는 '역사부정 규제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 논문에서 한 교수의 의견을 인정하면서도 당장 처벌법 도입에는 신중한 반응을 내놓았다. 한 교수가 지적한 '악의'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집단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죄 영역을 확장하거나 자율적 규제, 교육 등을 통한 '기념'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한다.

실제 형법 외적으로도 국회의원들은 당의 윤리위원회에서 형식적이나마 징계를 당했고 종편 방송사 역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았다. 유튜브나 일부 SNS, 포털에선 일부 게시물을 차단조치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규제는 충분하지 않고 공동체가 확립한 '사회적 기억'에 대한 훼손도 여전히 지속되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5·18 당사자들이 겪는 2차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지씨 재판을 방청한 5·18 당시 광주 시민은 "4번만에야 실형이 선고됐는데 또 구속이 안되니 앞으로도 계속 지지자들을 모아 같은 주장을 할 것"이라며 "최소한 지씨가 곧바로 저런 말은 못하게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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