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지난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전·현직 법관들의 비위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확대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영장내용 등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었던 신 부장판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영장청구 등 수사정보 일부를 행정처에 전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적법한 직무상 범위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일선 법원은 비리 연루 법관에 대한 징계 등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함과 동시에 언론 및 국회에서 확인을 요청하는 사실에 대한 답변 등을 준비해야 했다"며 "신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주로 처리하고 있던 중앙지법의 형사수석부장으로서 사건의 경위와 실체를 신속하게 정확하게 파악해 행정처에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각종 법원 예규와 지침은 법관 비위와 관련한 중요사항에 대해 사법행정 담당자에게 상급 사법행정기관으로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지방법원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지법 수석부장판사는 사법행정상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중요사건에 대해 원래 위임자인 대법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당업무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중 신 부장판사가 153쪽에 달하는 수사보고서를 임 전 차장에게 전달한 부분,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라있던 김수천 부장판사 등 영장 관련내용 9건 중 5건에 대해선 보고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이 신 부장판사에게 보낸 '법관 가족관계 문건' 역시 '영장 가이드라인'은 아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들이 속한 사법부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지난 2016년 8월 17일 임 전 차장 주도로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검찰 대응 방안' 문건에 대해 "문건 관계자들은 모두 '각 보고서는 검찰 수사 저지 목적에서 작성한 것이 아니며 일부 과격한 표현은 실행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임 전 차장이 문구와 표현을 들려줘 그대로 기재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며 "당시 검찰에 대한 대응·압박방안 검토가 이뤄진 것은 주로 검찰이 언론을 통해 전·현직 법관에 대한 수사정보를 고의적으로 유출한다는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중요사건에 대하여는 영장의 발부나 기각에 따라 언론, 검찰, 정치권 등에서 결론에 대해 평가를 하고 법원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기도 한다"며 "영장판사들이 언론의 오보나 추측성 기사,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영장판사가 직접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형사수석 부장판사가 법원과 형사부의 책임자로서 검찰·언론·정치권 등에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재판부가 이들의 행위에 대해 '실무적 관행'에 부합하는 정상적 사법행정 절차였다고 판시하면서 수사정보 전달을 지시한 장본인인 임 전 차장의 유·무죄 판단에도 직결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지난 14일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임 부장판사의 혐의는 재판에 직접적으로 입김을 넣는 사법농단의 '본류'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혐의로 기소된 임 부장판사에 대해 "임 부장판사의 재판관여 행위는 현행 법령상 명시적 근거가 없고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없다"며 "설령 임 부장판사가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더라도 재판관여 행위와 각 재판부 결정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관계와 위법성은 모두 인정됐지만 임 부장판사가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직무권한을 남용하지 않았기에 처벌이 어렵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직권남용죄의 기준을 까다롭게 제시한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관여 행위는 임 부장판사의 지위 혹은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지만 피고인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요건을 확장해석하는 것이어서 '죄형 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는 형사수석부장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해 징계사유 등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형사수석부장의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신 부장판사 등에 대해선 직무권한을 비교적 폭넓게 해석한 반면 임 부장판사 사건은 형식적 조문에 근거해 '직권' 영역을 지나치게 좁게 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자칫 법령상 직권의 유무와 조직 내에서의 정상성만을 따지다 보면 법리싸움에 갇혀 '사법농단'이라는 유례없는 사건의 본질을 짚어내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상관인 판사가 특정 재판에 개입하는 행위 등에 대해 불법성을 자인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법적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은 "직무권한의 유무는 법령과 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직권이) 남용될 경우 상대방에게 사실상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하다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확립된 판례"라고 항소 의사를 밝혔다.
'사법농단' 수사에 참여한 검찰 관계자는 "임 부장판사의 무죄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위에서 재판 개입을 해도 된다고 용인하는 판결"이라며 "전날은 신 부장판사가 (영장 등) 정보보고를 받을 권한이 있다고 직무범위를 넓게 판단하더니 임 부장판사의 판결은 또 반대인데 왜 기준이 달라지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임 부장판사의 경우, 직권남용죄는 원래도 입증이 쉽지 않은 죄목인데 대법원이 이를 직권의 유무 여부와 그 직권의 행사 및 인과관계로 나눠 충족 기준이 더 높아진 것 같다"며 "이후 사법농단 판결들에 연쇄적으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