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 종로 출마를 거세게 압박, 끝내 관철시키는 결기로 '위상'을 확보한 것에 비해 이번 결정은 다소 갈팡질팡한 양상이다. 공천 배제로 무소속 출마가 이뤄질 경우 당에 부담이 된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지만, 한발 물러선 모습은 향후 험지 차출 및 TK(대구‧경북) 물갈이 계획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양산을' 역시 간판급 주자로 대선 후보까지 지낸 홍 전 대표에게는 '험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종로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던 황교안 대표 측에선 홍 전 대표에게 '특혜'를 줬다는 불만이 나온다.
◇ 한국당 공관위, 홍준표‧김태호 PK 험지 출마 잠정 결론
한국당 공관위는 지난 12일부터 4·15 총선 공천 신청자 면접을 진행하는 동시에 물밑에서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의 배치에 대한 전략 및 여론을 살펴보는 모습이다.
공관위 기류는 두 사람의 PK 험지 출마로 흐르는 양상이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절반의 수확'이라고 했다. 홍 전 대표가 출마지를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서 '양산을'로 틀어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 맞붙겠다고 타협책을 내놓은 것에 대한 '화답'이다.
이석연 공관위 부위원장은 13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PK도 상당히 격전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홍 전 대표가) 양산 험지에 가서 대전을 치러 이기면 정권 심판론이 된다"며 "김태호 지사도 경남 험지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둘다 당으로서는 자산이다. 같이 가야하고, 자르는 것(공천 배제) 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공관위에서는 숙고 시간을 갖고 여론 추이를 보면서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PK 험지 출전에 잠정 결론을 내렸으나, 여론 추이를 지켜보고 발표를 하겠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발표는 공천 신청자 면접이 끝나는 오는 19일로 예상된다.
'양산대첩'이 유력한 홍 전 대표는 기존 밀양‧창녕‧함안‧의령 지역구 정리 절차에 들어갔다.
공관위의 이러한 모습은 황 대표에게 종로 출마와 불출마를 택일하라며 거세게 압박했던 초반 결기와는 다소 상반된다. 결정을 미루던 황 대표가 끝내 백기를 들면서 종로에 출사표를 던지자 공관위가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음 수순인 홍 전 대표, 김 전 지사와의 결판에선 김형오 위원장이 지난 9일 직접 영남으로 내려가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설득하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후 11일까지 답을 달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홍 전 대표가 '양산을' 선회로 역제안 했지만, 김 위원장은 "내 할말은 끝났다"며 완강한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결국 PK 험지 출마로 가닥을 잡으면서 한발 물러난 모양새가 됐다. 공관위 내에서는 두 사람을 자를 경우 '분란'이 예상되고, 홍 전 대표가 서울에서 출전하더라도 수도권 판세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내에선 전반적으로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권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수도권 바람만 일으키면 PK 선거는 그냥 휩쓸게 되는 것이다. PK에서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에게 험지가 어디있냐"며 "현실적인 타협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공관위 심정은 이해하지만, 험지 차출 퍼즐이 꼬이게 됐다. 수도권에 장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홍 전 대표가 '험지'라고 주장한 양산을을 진정한 험지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양산을은 민주당 서형수 후보가 40.33%를 득표해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이장권 후보(38.43%)와 1.9%p 차로 접전을 벌였다.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기초단체장)에선 민주당 후보가 56.26%로, 한국당 후보(43.73%)를 12.53%p 차로 이겼다.
이는 서울에서 '보수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용산보다 유리한 수치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진영 후보는 42.77%를 얻어 새누리당 황춘자 후보(39.91%)에게 2.86%p 차이로 이겼다. 6‧13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57.93%)가 한국당 후보(33.46%)를 24.47%p 차로 눌렀다.
게다가 홍 전 대표는 대선 후보를 지낸 간판급 주자이다. 앞서 자신을 '장수'로, 김두관 의원을 '졸병'으로 칭하며, "장수는 졸병과 싸우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관위의 갈팡질팡으로 향후 지도자급 수도권 험지 차출, 서울 수복작전 등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직도 김 전 지사는 고향인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출마 의지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관위에서는 창원 성산에 출마하길 바라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홍 전 대표를 서울로 올리고 김 전 지사를 험지로 보내는 방식이 적절했을 것"이라며 "공관위의 지금 점수는 100점 만점에 50점 밖에 안된다"라고 말했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되는 TK 의원들도 '우리도 타협하자'고 나서고 있다. 한 TK 의원은 통화에서 "똑같은 기준에서 기계적인 물갈이는 안된다. 우리도 정치적으로 타협책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 측은 홍 전 대표에게 '특혜'를 줬다는 불만 기류가 흐른다. 한 측근은 통화에서 "종로를 결단한 것에 비하면 PK 험지 출마는 명분이 매우 떨어진다. 홍 전 대표가 수혜를 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선 황 대표가 종로에서 패할 경우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지 않는 이상, PK에서 살아돌아온 홍 전 대표에 의해 당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자리하고 있다.
한편 공관위는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에 대한 결과 발표를 미뤄둔 채, 13일 오후 수도권 단수 공천 지역을 처음 발표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공천이 확정된 이는 나경원 의원(4선·서울 동작을), 신상진 의원(4선·경기 성남중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서울 광진을), 허용범 전 국회도서관장(서울 동대문갑) 등 4명이다.
인지도가 높은 나 의원과 오 전 시장을 우선 배치해 '한강 벨트'에 첫 포석을 놓고, 서울 판세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나 의원은 전임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오 전 시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지역구인 광진을을 1년 동안 샅샅이 누볐다.
신 의원과 허 전 관장은 지역구 경쟁력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세가 강한 경기 성남중원에서 신 의원은 4선을 역임했다. 허 전 관장은 동대문구갑에서 19대, 20대 총선을 뛴 바 있다.
나 의원과 오 전 시장, 신 의원 모두 비박계, 허 전 관장은 '원조 친박'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