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들은 왜 美대선현장을 쫓아다닐까?

한인유권자연대, 미국정치 영향력 확대 운동
의회 활용해 미국 움직이는 유태인 벤치마킹

12일 미국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의 버니 샌더스 후보 개표본부. 미국한인유권자연대 김동석 대표 등 일행 3명(노란색 원)이 버니 샌더스 후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사진=권민철 특파원)
지난 12일(현지시간) 밤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시의 서던뉴햄프셔대학 체육관에 수천명의 버니 샌더스 후보의 지지자들이 모였다.

뉴햄프셔주에서 이날 치러진 두 번째 대선 예비선거(프라이머리)의 개표 결과를 보면서 버니 샌더스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지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부류는 10회 이상 샌더스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단상의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부여됐다. 후보가 단상에 오르면 병풍처럼 뒤에 비치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으로 후원금을 낸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플로어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후보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자리다.

끝으로 후보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관객석은 선착순으로 온 일반인들에게 할당됐다.

백인들이 92%에 이르는 백초(白超)의 주(州)답게 체육관내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백인들뿐이었다.

흑인도 귀한 이 곳에 놀랍게도 동양인들 극소수가 관객석에 앉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바로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국한인유권자연대 김동석 대표, 송원석 사무국장, 장성관 연구원이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현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전날 워싱턴에서 이 곳까지 10시간 넘게 운전해 달려왔다고 했다.

샌더스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이들이 대선 현장에 온 것도 이날이 처음이 아니다.

일주일 전 아이오와 코커스 때도 현장에 임했었고, 더 멀리는 2016년 대선 때도, 2012년 대선 때도, 2008년 대선 때도 역시 선거 현장을 사수했다고 한다.

이들이 미국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이렇게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이유는 뭘까?

"미국에 살다보면 자기 생업 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대선 현장에 가보는 건 물론이고 투표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죠. 하지만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동포들의 권리나 영향력도 묻힐 수 밖에 없어요"

미국 한인유권자 운동의 1세대라 할 만한 김동석 대표는 국내에도 꽤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동포 유권자들을 조직해 한인 파워를 신장시킬 목적으로 25년 가까이 '유권자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그가 대선현장을 부지런히 누비는 것은 대선현장, 즉 유력 대권주자들 가까이에 '힘'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란다. 결국 미국 사회에서 '힘'있는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그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서 재미동포들의 위상을 높이고 권리도 신장시키고 나아가 한미관계도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주류 인사들과 인맥을 다지기 위해서는 선거 때 만큼 좋은 찬스가 없다.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거들고, 자주 눈을 마주치고, 스킨십을 해 놓으면 언젠가는 우리 편이 되 주더라는 게 과거의 경험이다.

설령 대권 후보인 상원 의원이 낙선한다 해도 그의 의회 안에서의 존재감은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게 미국의 이 같은 관계의 매커니즘을 터득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유태인들이었다.

김동석 대표가 지난 7일 워싱턴 한국 특파원들을 상대로 2020년 미국대선 흐름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하만주씨 제공)
미국 내 유대인은 650만명 정도로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장악하며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집단이다.

유태인이 미국의 숨은 실력자로 우뚝 선 것은 처음부터 그랬던 게 결코 아니다.

2차 대전때 종족 말살 직전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한 이후 종족을 유지시키는 방편으로 미국의 존재에 눈을 뜬 이후부터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통해 전세계에 흩어진 유태인의 안위를 지키고 유태인의 삶을 발전시키기 위해 1947년 '미국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라는 로비단체를 만든다.

그 이후 이 단체가 얼마나 막강한 단체로 성장했는지는 이 단체의 컨퍼런스가 열리는 3월이면 미국의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는 사실 하나로 알 수 있다.

435명 연방의원들이 AIPAC에 잘 보이려고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바람에 의회 차원에서 자체 휴회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매년 컨퍼런스가 끝나면 참석한 1만 5천명의 유태인들이 2억 달러 정도씩을 모금합니다. 그 돈으로 여러 곳에 기부도 하고, 로비도 하는 거죠."

이런 유태인들의 활동상을 안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김 대표가 직접 AIPAC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 지난 1999년이다.

이후 절치부심한 끝에 2013년 AIPAC을 벤치마킹해 '미주한인 풀뿌리 컨퍼런스 전국대회'를 워싱턴 DC에서 개최하기에 이른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석자들의 양과 질이 우수해 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대회 때에는 연방의원 15명을 참석시키는 성과를 거두며 워싱턴 정가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단체로 성장했다.

"한국정부도 재외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일 같은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재외국민들이 현지국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정치적 영향력을 배가시키는 활동을 지원하는 게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대표가 미국한인유권자연대 소속 상근자 5명을 데리고 상대하는 연방의원들만 535명(하원의원만 435명, 상원 100명)이나 된다.

지난 2007년 일본의 벽에 막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위안부결의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역사적인 사건의 배후도 바로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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