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12일 자본시장법 위반(미공개정보 이용·허위신고)·업무상횡령·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교수의 네 번째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평소와 같이 회색빛 정장 차림으로 입정한 정 교수는 이따금 변호인들과 귓속말을 주고받기도 하는 등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정 교수 측은 지난 기일에 검찰이 정 교수가 자신이 투자한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측에 조 전 장관의 청문회를 대비해 관련자료를 적극적으로 숨기고 폐기하려 했다며 제시한 증거자료들을 반박했다.
또 코링크PE의 실소유주 의혹을 받고 있는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모씨를 통해 정 교수가 이를 코링크PE 직원들에게 사주했다는 증거위조교사·증거인멸교사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조 전 장관이 (장관) 후보자로 지정된 이후 여러 가지 의혹보도가 있었고 정 교수로서는 '가족 펀드'냐, '블라인드 펀드'냐, 투자약정을 부풀린 것 아니냐 등 이런 부분에 대해 해명하고 사실관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조씨를 비롯한 코링크의 여러 인사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며 "비교적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도 (코링크 측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답변이 돌아오고 사람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정 교수 입장에선 굉장히 압박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당시 펀드 관련 내용에 대한 설명을 코링크 측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정 교수가 (코링크에 같이 투자한) 남동생과 관련된 자료들을 숨기거나 없애라는 '취지의 요구'를 했다고 돼있다"며 "통상 '교사'란 이유로 기소하면서 교사한 내용을 이렇게 기재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정확하게 (정 교수가) 그렇게 했다는 의도인 것인지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가 사전에 투자처 등 펀드 운용 현황을 전혀 몰랐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지난해 8월 24일 정 교수가 코링크PE의 임원인 임모씨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도 증거로 내놓았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이 제시한 해당 메시지에는 정 교수가 "유선상으로 말씀드린 내용을 정리하보겠다. 꼭 팩트에 기초하여 답변을 주시기 바란다", "블라인드 펀드라서 이번 청문회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투자처가 웰스씨앤티인지도 몰랐고 가족 말고는 출자자 수나 명단도 몰랐는데 보안사항이라고 LP(Limited Partner·사모펀드 투자자)의 개인정보 보안은 유지돼야 한다더니 언론에 먼저 터지는 이유는 뭔가요"라는 등 임씨에게 해명을 요구한 질의사항들이 담겼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청문회 당시 정 교수는 사실관계 파악과 법률적 의미를 알기 위해 코링크 측에 일방적으로 문의하는 상황이었다"며 "이를 보면 정 교수가 어떤 대응을 지시하고 방향성을 정해 코링크 측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했다는 검사의 전제는 그 자체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살인 사건'을 예로 들며 정 교수 측 논리를 에둘러 비판했다.
검찰은 "살인사건과 비교해보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이 어떤 살인현장에 갔고, 누군가를 찔러 죽였다, 이 범죄사실과 관련해 피의자나 피고인이 어떤 현장에 간 사실 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며 "그런데 피의자나 피고인이 전체 범행을 숨기기 위해 그 전제가 되는 살인현장에 간 사실을 숨기고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현장에 간 폐쇄회로(CC)TV, 타고 간 차 등을 숨겼다면 이는 당연히 살인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위조교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현장에 간 사실 자체는 죄가 되지 아니할지언정 전체 범행경과 중 일부분과 관련된 사실, 양형 사실과 관련된 증거를 인멸 내지 위조한 경우에도 증거인멸 혹은 위조교사가 된다는 게 법원의 확립된 판례"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도 공판 과정에서 재판의 직접 당사자는 아닌 조 전 장관이 언급되면서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이 정 교수의 코링크PE 투자 경과를 설명하면서 "조씨가 합동제사 등 집안행사를 통해 정 교수보다 조 전 장관과 먼저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고 하는 등 조 전 장관이 투자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리란 점을 내세우자 정씨 측 변호인이 즉각 제동을 걸었다.
정씨 측 변호인이 "지난번에도 그렇고 조 전 장관이 이 사건에서 (정 교수의 투자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쟁점이 아닌데 (검찰이) 그 부분에 관한 주장을 계속하시는 경우가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하자 재판부는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응수해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앞서 법원 정기인사로 남부지법으로 전보돼 이날 마지막 재판을 진행하게 된 송인권 부장판사는 "민사재판에서는 당사자 입장에서 투자냐 대여냐, 가 많이 다퉈지고 있는데 물론 재판부에서는 당사자 말을 믿지 않고 행동을 많이 본다"며 "(정 교수 사례처럼) 원금이 보장되고 일정한 수익이 지급되면 대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검찰에서는 그런 사정을 뒤집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내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