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기생충'에 관한 어느 사회학자의 제언

영화 '기생충' 칸부터 아카데미까지 여정 마무리
현실 변화시키는 문화의 힘…참 여정 이제 시작
"핵심문제…우린 왜 이토록 일관되게 불행한가?"
"'출세 엘리트' 대 '출세 욕망 엘리트' 투쟁 감시해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 작품 '기생충'이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10일(한국시간)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 등 4관왕까지 전 세계 유수 영화상을 휩쓰는 여정을 마무리했다. '기생충'이 거머쥔 수많은 트로피만큼, 고삐 풀린 체제가 빚어내는 극심한 불평등과 맞닥뜨린 극중 인물들의 삶은, 지구촌에 '내 이야기다'라는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문화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추동력을 지녔다는 데서 '기생충'의 진짜 여정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사회학자인 이원재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11일 CBS노컷뉴스에 "봉준호 감독 작품들 속에서 양극화 문제는 무 자르듯이 쉽게 해석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 시대 철학이나 예술이 지닌 보편성은 '프롤레타리아는 착하고, 부르주아는 부도덕하다'는 과거의 명제보다 훨씬 복잡한 지점을 건드리는데, 이것이 '기생충'에서 '냄새', '예의'라는 장치로 치환된다"고 설명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빈자는 부자보다 착해질 기회마저 줄어든다.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빈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 마련인데, 국가가 복지정책을 만들 때 구성원들이 최소한 존엄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여건을 사회적 합의로 마련하려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이른바 '노예 상태로부터의 자유'로 표현되는 시민적 평등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될 때 세금과 같은 시민적 책임도 정당성을 지닌다."

실제로 봉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선악을 뚜렷하게 구분짓지 않는다. 이러한 서사는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관계 안에서 주인공들이 비극으로 치닫도록 만드는, 사회 '구조'를 향한 직시로까지 관객들을 이끈다.

이 교수는 "현대 사회가 지닌 핵심 문제의식은 '우리는 왜 이토록 일관되게 불행한가'라는 물음에 녹아 있다"며 "이는 필연적으로 '일관된 불행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물음으로 연결된다. 그 해법으로 개인에게 '시골로 내려가 무소유 삶을 누리라'고 할 수는 있어도 집단에게 적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 제럴드 앨런 코헨(1941~2009)은 수십 년 전 이미 '기본소득' 개념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체제이지만,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일관적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물질적 풍요가 사람을 갈수록 불행하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해법으로, 그는 기본소득 보장을 주장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기본소득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에는 코헨 역시 무력했다."

그는 "결국 집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수밖에는 없는데, 절대다수를 위해 검약하고 환경친화적이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합의하자고 할 때 소수 엘리트 계급에게 더 많은 부담이 전가되기 마련"이라며 "이러한 맥락에서 평등한 사회와 불평등한 사회를 구분하는 지점은 소수 엘리트들이 사회적 합의로 마련한 법과 제도를 공평하게 지키고 있느냐에 있다"고 했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집단을 이루고 산다. 이른바 '조직화'다. 조직화 과정에서는 계급이 만들어지는데, 똑똑한 존재가 리더가 될 경우 집단 전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유일하게 약한 동료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연에 반하는 이러한 특성은 결과적으로 인류가 다른 종들과의 전쟁에서 이기도록 만들었다. 근대 복지 제도와 법 역시 이러한 정신에 근거를 뒀다."

◇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절망…"저들은 우릴 얼마나 대변하는가?"

이 교수는 "과거에는 이렇게 역사가 발전해 나가면 계급이 사라지는 등 인류가 지상낙원을 이룩할 것이라고 본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우리네 경험적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는 시나리오"라며 "우리는 현실에서 사회 개혁과 노동권 신장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부동산을 늘리려 애쓰는 엘리트 계급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은 현재 자기 모습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5년, 10년 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한국 사회 불안은 교육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데서도 단적으로 확인된다. '내가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자신이 지닌 자원 대부분을 쓰는 셈이다."

그는 "이러한 교육 문제 해법은 그것이 되도록이면 낮은 비용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며 "결국 개인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인데, 이는 '내가 최선을 다하면 이 사회는 응답한다'는 믿음이다. 그 다음부터 실패는 개인의 책임이 되고, 전체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조국 사태처럼,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수와 진보 사이 갈등으로 여겨지는 사건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공평하게 지키고 부자들에게 세금도 더 걷자'고 한다. 이와 반대로 '아니다. 나는 더 오르기 전에 강남 아파트를 사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전자를 외치면서 후자의 삶을 사는 엘리트들에 있다."

이 교수는 "공평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구성원 모두가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있다"며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피해가 덜하다고 여기는 세력은 그 사회 엘리트들이다. 결국 우리 사회 논쟁 대다수는 부자와 빈자의 갈등보다 '출세한' 엘리트 세력과 '출세를 욕망하는' 엘리트 세력 사이 투쟁"이라고 진단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 이야기를 예술이나 학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계급은 상위 10% 안에 집중돼 있다. 이 안에서 나뉘는 두 엘리트 세력이 과연 대다수 사회 구성원을 얼마나 대변하고 있는지 한 번쯤 되물어야 할 때다. 이 프레임 자체가 과연 보편적인 것이냐고 말이다. 그들이 내놓고 절대다수에게 지키기를 요구하는 법과 제도를 그들 스스로 과연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 역시 우리네 역할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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