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문화 국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역사적 사건"이라며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심 원내대표는 "앞으로 제2, 제3의 봉준호가 탄생해서 세계의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가 차지하는 위상을 높일 것"이라며 "영화를 비롯해 문화·예술 분야에서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도록 입법 등을 통해 지원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강효상 의원도 "우리 한국 CJ그룹이 한국영화에 끼친 긍정적인 의미를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경영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CJ그룹에 우리가 축하하고 감사를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봉 감독과 CJ를 향한 한국당의 이런 '극찬'은 사실 좀 난데없다. '기생충'이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한국당만 관련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가 프랑스 배우 알랭 드롱의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을 두고 데뷔 영화에서 '리플리' 역을 연기한 것을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가 계속 거짓말 하는 것을 보면서 '리플리 증후군'이 떠올랐다"고 비꼰 것이 전부다.
심지어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지난해 12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4+1 협의체'를 비판하면서 "민주당과 그에 기생하는 군소정당은 정치를 봉준호 감독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정치판의 기생충'임은 틀림이 없다"고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봉 감독을 향한 한국당의 평가가 그동안 꽤 인색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늘 눈엣가시였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블랙리스트에서는 '강성 좌파' 성향으로 분류됐다.
봉 감독의 영화도 '문제적'이라고 여겨졌다. '괴물'은 "반미 정서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해 국민의식을 좌경화한 영화"로, '살인의 추억'은 "공무원·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하는 영화"로,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기는 영화"로 평가받으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CJ E&M이 제작·배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박근혜 대선후보를 희화화하는 내용이 담긴 tvN의 '여의도 텔레토비'가 박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변호인'에 자회사인 CJ창업투자가 공동투자한 것도 화를 돋웠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7월 당시 조원동 경제수석에게 "CJ그룹이 걱정된다. 손경식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이미경 부회장은 CJ 경영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내렸다.
조 전 수석은 실제로 며칠 뒤 손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뜻"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진 2016년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수석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한 이 부회장의 수상 소감 이후 이런 '과거'가 소환되자 한국당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성태(비례대표) 의원은 "포털 뉴스 기사에 CJ 이미경 부회장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급되고 있다. 조직적인 댓글도 눈에 많이 띄고 있다"면서 "그냥 축하하면 될 일이지, 왜 정치색을 강요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와 강요 미수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기생충'이라는 영화 자체가 한국당에게 불편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홍준표 전 대표는 최근 '기생충을 봤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패러사이트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는 "'기생충'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잘 꼬집었기 때문에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저간의 사정을 알면 알수록 한국당은 절대로 '기생충'에 점수를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