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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모성 배반→처벌… 韓 영화가 답습한 여성 캐릭터들
7일 오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속특강 '한국영화가/를 사랑한 여자들: 30년 한국 씨네-페미니즘의 연대기 2'의 첫 강의 '역사의 특이점으로서 여성의 역할, 그 재현'이 진행됐다.
전주국제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해 온 영화평론가 맹수진 씨는 '역사 영화'를 중심으로 한국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는지 그 '답습'의 유형을 살폈다.
맹수진 씨는 우선 '역사'도, '역사 영화'도 쓴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스토리텔링(내러티브)이라는 점을 짚었다. 그는 "과거 역사학은 학자들의 전유물이었기에 학자들의 역사관에 의해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누락된 이야기들이 있다"라며 "(역사 속) 사건이란 사실은 역사학자의 그물망 안에 들어와 선택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은 미디어를 통해 각자의 계층, 정체성에 따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류 혹은 전체의 이야기로 바꿔나가기 위한 경합의 장이 펼쳐지는데, 이게 가장 치열한 분야가 바로 '역사 영화'"라며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2000년대 전후로 쏟아진 블록버스터를 예로 들었다.
맹 씨는 "2000년대 등장한 이 영화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게 '고아 의식'이라는 정서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버림받았고, 아버지는 무능하거나 폭력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끝없이 만들어졌다"라며 "이 영화들에서 여성은 부재하다. 한국영화 산업의 재편과 맞물려 양산된 이 블록버스터 영화들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거의 다 남성이었고, 이것은 '여성'의 시선이 배제된 남성 서사였다"라고 전했다.
맹 씨는 '귀향'을 예로 들어 "위안부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성폭력을 당했는지, 그 참혹성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아시아 각국의 위안부 희생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해서도 "인터뷰 혹은 증언이라는 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고 표현하기 싫을 만큼 언어화하기 어려운 고통을 꺼내게 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고문 논리, 참혹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트라우마를 겪는 당사자를 인터뷰할 때 재현의 윤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라고 말했다.
맹 씨는 "(많은 영화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점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라며 "그 속에서 다른 모습은 모두 지워지고 오직 희생자로서의 여성만이 남게 된다. 그건 일종의 왜곡이자 과장이다. 그래서 카메라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부연했다.
반면 '낮은 목소리 2-숨결'은 당사자들의 일상을 다룸으로써, 오직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로만 소환되었던 이들의 다양한 모습과 일상에 집중한 긍정적인 예라고 소개했다.
모성을 배반한 여성 캐릭터를 처벌하는 서사도 한국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맹 씨는 '해피엔드'에서 여자 주인공이 살해되는 결정적 원인으로 '모성에 대한 책임 회피'를 들었다. 여성 주인공이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결정적으로 그녀를 살해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고, 남편의 행위도 정당화한 것"이라며 이런 경향은 '자유부인', '하녀',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까지 유구한 역사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맹 씨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빼앗긴 주권에 대한 남성 엘리트 지식인들의 자책감과 죄의식은, 강간당하거나 침탈당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묘사되었고 이들은 '희생당한 민족의 누이'로 알레고리화 되어 왔다. 혹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여성은 불온한 존재로 취급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을 향한) 뿌리 깊은 진부한 상상력을 지적하고 싶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도 (역사 영화 속 여성은) 여전히 이러한 재현의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는 철저히 남성 관객, 남성 주인공, 남성 지식인의 필터를 거친 작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