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악플' 판결, 전수 분석해보니…"아는 사람이 더 악질 ② 목숨 빼앗는 악플로 유죄 받아도…"낼만한 벌금 수두룩 ③ 악플 피해자 울린 수사기관…"이 정도가 무슨 악플이냐" ④ 10만개 악플 달린 '한샘 사건'…법원판결은 들쭉날쭉 ⑤ "전라도·조선족은 치료말라" 혐오악플은 왜 퍼지나 (끝) |
◇ 재난 상황에마저 판치는 혐오 댓글
# "우한폐렴에서 홍어폐렴으로 변종 발생함"
"전라도것들과 조선족은 치료해주지말고 강제북송처리해라"
"민주주의 성지 광주에서 발생한 우한폐렴 환자 국가유공자 선정하라"
지난 5일 광주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의 뉴스에 달린 악성 댓글들이다. 이날 해당 속보에 달린 200여 개 댓글 중 상당수가 지역비하 혐오 댓글이었고 일부는 상위 추천 댓글에도 올랐다.
국가적 재난 상황인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까지 악성 댓글은 범람 중이다. 사태 초기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우한이라는 이유로 중국인들이 혐오 댓글의 표적이 됐다면, 시간이 지나 불씨는 특정 확진자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옮겨갔다. 확진자의 직업에서부터 사생활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들이 댓글을 통해 번졌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혐오표현'은 악성 댓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의 78.5%가 온라인 뉴스의 댓글로 혐오표현을 접했다.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의 댓글과 페이스북의 댓글이 뒤를 이었다.
◇ 혐오 댓글, 맥락도 없이 반복적으로 달린다
# A씨는 2016년 10월 한 대기업 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피해자가 금융감독원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기사에 "허영끼 가득한 관종녀죠. AV배우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네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비슷한 시기 피해자의 학력이 허위라는 취지의 댓글을 수차례 게시한 A씨에게 재판부는 "구체적 사실 확인 없이 댓글을 여러 차례 게시해 죄질이 좋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면서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 B씨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낸 피해자의 방송채널에 "이 X발 전라도년 레즈인게 뭔 자랑이라고 떠들고 있어? 어? 자랑이야?"라는 댓글을 달았다. B씨는 피해자가 방송 중 전라도 사투리를 쓴 적이 있어 해당 댓글을 달았고 '년'은 비하적인 의미가 아닌 계집녀(女)와 다를 바 없는 단어라며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욕설과 함께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정당한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대부분 혐오표현 댓글들은 기사 본문이나 게시글의 맥락과는 전혀 다르게 표출됐다. 위 사례처럼 피해자가 금감원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기사에 'AV배우'라는 여성혐오 표현이 달리거나, 동성애 사실을 밝힌 방송내용에 '전라도년'이라는 지역혐오 표현이 달리는 식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두 연예인도 '맥락 없는 혐오'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난해 4월 구하라가 안검하수 수술을 했다는 기사에는 "페미X이네", "전라도X" 등의 성별‧지역 혐오표현이 달렸다. 지난해 5월 설리가 한 프로그램의 고정MC를 맡았다는 기사에도 어김없이 "메갈X", "국민걸X" 등의 표현이 있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 안검하수 수술 여부와 프로그램의 MC를 맡았다는 사실이 여성혐오와 연결되지는 않음에도, 맥락도 이유도 불분명한 혐오는 두 여성을 괴롭혔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홍남희 전문연구원은 "사건 자체가 성적 맥락이 아니어도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에는 여성혐오의 댓글이 달린다. 소수자인 여성에게 성적인 표현을 하면 위신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라고 말했다.
혐오표현 악성 댓글은 반복성을 띄는 특징도 있다. 악성 댓글 가해자들은 혐오표현 댓글을 평균 15회에 걸쳐서 수차례 작성했다. 유형별로 △사실 및 허위주장 댓글의 게재 횟수 평균 5.5회와 △욕설 및 언어적 협박 게재 횟수 평균 11.2회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 혐오표현 피해 막심한데.. 처벌은 가장 낮아
CBS노컷뉴스가 지난해 악성 댓글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재판에 넘어간 악성 댓글 가운데 혐오표현의 비율은 33.5%를 차지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2016-17년 사이버모욕죄 판결문을 토대로 조사한 혐오표현 비율인 31.6%에 비해 소폭 증가한 수치다. 혐오표현의 유형 중에는 △젠더 혐오가 73.3%(44개)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장애인 혐오가 23.3%(14개)로 뒤를 이었다.
다만 취재팀은 차별적 표현이 명시적으로 있는 악성 댓글만 혐오표현으로 분류했다. 판결문에 기재된 사실관계만으로는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꽃뱀'은 혐오표현으로 분류했지만, 같은 맥락에서 쓰인 '무고죄로 고소하자'는 댓글은 분류하지 않았다. 따라서 맥락을 고려한다면 판결문에서 혐오표현으로 분류될 악성 댓글의 비율은 더 커질 수 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혐오표현은 특정계층이나 특정 성향을 갖고 있는 소수의 이들에 대한 공격으로, 욕설처럼 일반적으로 쓰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상처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혐오표현 댓글에 대한 벌금은 다른 유형의 댓글들에 비해 가장 낮다. 혐오표현으로 유죄를 받은 사건의 평균 벌금은 55만원 수준. 허위사실 대한 벌금은 평균 160만원과 욕설 및 협박에 대한 벌금은 평균 73만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통상 사실 및 허위사실을 다루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모욕죄에 비해 양형이 무겁다는 것을 고려해도, 혐오표현이 욕설보다 더 낮은 수준의 벌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일반적인 욕설은 개인을 향한 것이지만 혐오표현은 속성을 공유하는 집단에게 똑같이 피해를 준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혐오에 대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경향도 있어 중점적으로 규제하고 규제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해(2019년) 악성 댓글과 관련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판결문을 전수 조사했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통해 '댓글', '악플' 등의 단어로 판결문을 검색한 뒤 내용을 확인해 기준에 맞는 사건들을 추렸다. 대법원에서 비공개 결정한 판결문은 제외했다. 댓글의 유형은 △사실 및 주장, △욕설 및 언어적 협박, △혐오표현으로 나눠 분석했다. 분류기준은 지난해 12월 발간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에서의 성차별적 혐오표현에 대한 심의방안 연구'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