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개 악플 달린 '한샘 사건'…판결은 들쭉날쭉

[훅!뉴스] '죽음의 악플', 242건 판결문 전수분석④

지난해 연예인 두 명이 세상을 등졌다. 모두 악성 댓글로 인해 피해를 호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후 악성 댓글로 인한 폐해와 이를 근절하자는 움직임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떤 괴롭힘을 줬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온라인에서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악성 댓글은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괴롭히는지 지난해(2019년) 악성 댓글 관련 판결문 242건을 전수 조사했다. CBS노컷뉴스는 판결문을 통해 들여다본 악성 댓글의 실태를 '죽음의 악플' 기획을 통해 5회에 걸쳐 내보낸다. 기사에 소개될 악성 댓글들은 판결문에 기재된 표현 그대로를 가져왔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악플' 판결, 전수 분석해보니…"아는 사람이 더 악질
② 목숨 빼앗는 악플로 유죄 받아도…"낼만한 벌금 수두룩
③ 악플 피해자 울린 수사기관…"이 정도가 무슨 악플이냐"
④ 10만개 악플 달린 '한샘 사건'…법원판결은 들쭉날쭉
(계속)

◇ '한샘 성폭행 사건' 악플만 10만건…정식 재판 판결문 전수조사

지난 2017년 한샘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동기에게 불법촬영을 당한 후, 뒤이어 교육담당자에게까지 성폭력을 당했다. 이른바 '한샘 성폭력 사건'이다. 인사팀장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진술 번복을 강요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피해자의 입사동기와 교육담당자는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고, 인사팀장의 간음 목적 유인 혐의는 최근 재수사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 사건이 피해자의 인터넷 폭로글로 인해 처음 알려지고 관련 기사들이 나오자 피해자에 대한 악성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피해자를 변호한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500여개의 기사에 악성 댓글이 10만 건이 달렸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댓글을 보고 쓰러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중 정도가 심하지 않거나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를 한 경우를 제외한 700여명에 대한 고소가 진행됐다. 대부분은 즉결심판이나 기소유예,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고 정식으로 재판을 진행한 케이스가 10여건이 됐다. CBS노컷뉴스는 지난해 한샘 성폭력 사건의 악성 댓글 판결문을 모두 분석해 각 악성 댓글들에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 비교했다. 동일 사건에 달린 악성 댓글들에 대한 법원의 처분을 단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사례다. 아래의 악성 댓글들은 실제 한샘 성폭행 사건의 뉴스 기사를 두고 작성돼 재판으로 넘어간 댓글들이다.

◇ 꽃뱀은 피해자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

문제의 악성 댓글의 절반 이상에는 '꽃뱀'이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피고인들은 모두 이 단어가 피해자를 직접 가리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해자가 억울한 입장에 몰린 성범죄 사건'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쓴 단어로, 사람을 모욕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판단은 재판부마다 각기 달랐다.

# "결론은 역시 꽃뱀. 무고다. 남자만 인격 살인 당해서 인생 박살 난 케이스지..." (벌금 30만원)

위 댓글을 심리한 재판부는 댓글 내용이 피해자를 지칭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피고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꽃뱀'이라는 표현은 피해자를 가리키게 되고 피고인도 '꽃뱀'이 피해자를 가리킨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 "꽃뱀한테 쳐물리는 놈은 ㄹㅇ O신같다" (벌금 30만원→무죄)

항소심에 가서 '꽃뱀'이라는 단어의 피해자 특정 여부가 달라지기도 했다. 위 악성 댓글의 1심 재판부는 "기사에서 '꽃뱀'으로 지칭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뿐이고 다른 댓글 내용 중 등장하는 '꽃뱀'도 모두 피해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꽃뱀'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하여 단 한 차례만 짧은 내용의 댓글을 게시했을 뿐 특별히 피해자를 지칭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어찌된게 꽃뱀이라는 년들은 학습효과가 없는거야 OOOO년들ㅋㅋ" (무죄)

위 악성 댓글을 심리한 재판부는 "비속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특별히 피해자를 지칭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을 맡은 김 변호사는 "꽃뱀은 본인의 성적인 부분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피해자는 실제 성범죄 피해로 인정받은 사람"이라며 "꽃뱀과 같은 혐오 표현에 무죄가 나온 부분은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악플 가해자에 주로 적용되는 법률 중 하나는 형법상 모욕죄. 재판부는 모욕죄의 판단기준으로 "표현이 다소 무례하더라도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지 않는다면 모욕죄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례를 적용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을 판단하는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 "남잔 그냥 원나잇 한건데 여자가 깊은 사이라고 생각하고 진흙탕 싸움 하는거구만" (벌금25만원→무죄)

1심 재판부는 위 댓글의 표현이 "상대방을 강간죄로 고소한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며 "이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정도의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댓글 중 '원나잇', '진흙탕 싸움'이라는 표현은 피해자를 직접 대상으로 한 표현이라기보다는, 피고인이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표현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 "술먹고 꽐라되서 여자가 단단하고 탄탄한게 붙으니깐 메달리고 싶어서 당한다는거 모르고 메달리다가 당해버린뒤 그대로 잠 들고 일어나서 관계맺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강간당했네하고 신고하면 강간되는건가?" (무죄)

재판부는 위 댓글의 표현은 저급하지만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표현이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하다거나 음란한 성향이라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 위 악성 댓글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쓴 댓글은 괜찮다?

악성 댓글을 작성한 시기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대부분의 악성 댓글은 사건에 대한 양측의 공방이 오갔던 2017년 11월에 작성됐는데, 당시에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어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합의하에 한 성관계에 인사 담당자만 피해봤네?" (무죄)

재판부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피해자와 교육담당자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이 기사에 댓글을 작성할 당시에는 아직 전 국민적 관심사로 성숙되지 않아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


김 변호사는 "당시는 피해자의 주장과 가해자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고 기사가 각각 다른 시각에서 생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이 상황에서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만 욕설이나 피해자를 매도하는 단정적 표현까지 써가면서까지 할 필요는 전혀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협회 공보이사 이수연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모욕죄 자체를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아 기소를 안 하고 정식재판으로 넘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다보니 판례 자체가 많이 없어서 기준이 명확치 않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해(2019년) 악성 댓글과 관련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판결문을 전수 조사했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통해 '댓글', '악플' 등의 단어로 판결문을 검색한 뒤 내용을 확인해 기준에 맞는 사건들을 추렸다. 대법원에서 비공개 결정한 판결문은 제외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