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김덕기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홍제표 > 지난 주 이 시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같은 전염병도 새로운 유형의 안보 위협으로 떠올랐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개별 국가나 인류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핵무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 후 1주일 사이에 신종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서 전방위로 파장이 확대되고, 한중관계도 그 영향권에 들어왔습니다. 양국 간에 누적돼온 갈등이 중국 혐오 현상으로 표출된 것도 한 예입니다. 급기야 어제는 신임 중국 대사가 부임 닷새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전례가 없던 현상들입니다. 오늘은 이번 사태로 얼굴을 붉히게 된 한중관계를 살펴보고 향후 전망을 해보려 합니다.
◆ 김덕기 > 과거에도 사스나 메르스 사태가 있었지만 한중 갈등 양상까지 벌어진 것은 좀 이례적인 것 같아요. 왜 그런가요?
◇ 홍제표 > 2003년 발생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지금만큼이나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먼저 발생한 전염병이죠. 하지만 이로 인해 양국관계가 어그러지기 보다는 오히려 가까워진 계기가 됐습니다. 2003년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사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외국 원수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2015년에는 중국 측이 그에 보답하듯 메르스 사태 와중에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위원장이 방한했습니다. 서로 국가 체면을 세워준 셈입니다. 싱하이밍 중국 대사도 어제 이런 과거를 거론하며 역지사지의 자세로 양국 협력을 당부했습니다. 들어보시죠.
“장덕강 전인대 위원장을 제가 모시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메르스 가장 심할 때. 한국 분들 우리 만나면 고맙다, 정말 우리를 지지했다, 중국은 완전한 이웃이다라고 했습니다.”
반면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는 양상이 다릅니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67만여명이나 참여하는 등 노골적인 중국 혐오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국이 패권주의적인 오만하고 무례한 행태를 보여온 것에 반감과 경계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말로는 선린우호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근육질 외교’를 해온 것에 대한 분노인 셈입니다.
◆ 김덕기 > 지적하신 대로 나름대로 이유는 있지만 좀 우려스러운 수준입니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현실적 관계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요?
◇ 홍제표 > 그게 정부의 딜레마입니다. 국민 안전과 한중관계,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최적의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지난 2일 중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철수권고’로 높였다가 몇 시간 만에 ‘검토’로 수정하며 난맥상을 드러낸 것도 이런 이유에섭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모습이 자칫 ‘중국 눈치보기’로 비춰지고 그 반작용으로 혐중 정서가 더 확산될 가능성입니다. 이 경우 정부도 여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더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겨우 안정을 되찾아가던 한중관계는 다시 악화될 것입니다. 4월 총선 정국에서 중국 눈치보기가 정치적 공격 프레임이 될 공산도 큽니다. 이미 자유한국당 등은 공세에 돌입했습니다. 황교안 대표의 말을 들어보시죠.
“우한 폐렴 확산 차단보다 반중 정서 차단에 더 급급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문재인 정권의 고질적인 중국 눈치 보기에 국민의 불신은 더욱 깊어집니다.”
◆ 김덕기 > 중국 대사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모종의 메시지를 보낸 셈인데 한중관계가 이미 삐걱대는 건가요?
“외교 마찰이다라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도 긴급상황에서 대응하면서, 우리도 국내적으로 대응하면서 서로 상당히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구요.”
◆ 김덕기 > 지금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민감한 변수들이 여러 개가 있어서 전망이 썩 좋지 않군요?
◇ 홍제표 > 앞서 말씀 드렸듯 국민 안전과 한중관계는 현 시점에선 다소 상충되는 가치입니다. 뭘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성숙한 시민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이게 잘 뒷받침된다면 과거 사스나 메르스 때와 같은 전화위복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수레의 양바퀴처럼 한 축에선 우리 국민 안전을 위한 단계적이고 분명한 대응 조치가,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운 이웃국가에게 손을 내미는 성숙한 국민외교가 함께 진행돼야 한중관계의 진일보한 발전을 나타내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은 지난해 일본의 경제보복 때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품위 있는 시민의식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중국에 대한 묵은 감정은 잠시 뒤로 하고 인류애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손을 내민다면 정상외교로도 이루지 못할 국민외교 성과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