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험지' 출마 카드를 꺼내들었던 황 대표가 최전선에서 이탈하려고 하자,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TK(대구‧경북) 현역 의원 등 일각에선 집단 반발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보수통합과 당내 공천 물갈이 등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종로 기피설(設)'이 황 대표의 발목을 잡은 모양새다.
◇ '종로 빅매치' 침묵 중인 黃…타지역 여론조사 논란
지난달 3일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한 황 대표는 종로 출마 여부에 대해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는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대선주자들이 디딤돌로 삼았던 곳이다.
이 때문에 보수진영 유력 대선주자인 황 대표 또한 이번 총선에서 종로에 승부수를 던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종로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달리 황 대표는 "당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며 애매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 내부에선 황 대표를 서울 용산·양천갑·경기 용인병 등에 출마시키는 방안과 함께 종로에는 정치 신인을 보내 '힘 빼기' 전략을 쓸 수 있다는 구상까지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용산과 양천갑 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당 소속 예비후보와 황 대표의 가상대결 관련 여론조사가 실시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황 대표의 종로 기피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3일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황 대표의 종로 출마 문제에 대해 "오는 5일 수요일에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종로 출마 관련 논란이 악재로 작용하자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불식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환영한다"‧"뜨거운 아이스커피" 與 도발…당내 "타이밍 늦어" 불만 고조
문제는 종로 출마 여부 관련 논의가 장기화되면서 당 안팎에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황 대표의 출마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에서 뛰고 있는 여당 소속 예비후보들은 해당 지역으로 나오라며 도발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을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김민석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종로가 무서우면 영등포을로 오시라"고 했고, 경기 용인병에서 준비 중인 같은당 정춘숙 의원도 "환영한다"고 밝혔다.
양천갑 현역인 민주당 황희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있는 험지를 고른다는 말인지 막걸리인지, 뜨거운 아이스커피 같은 알쏭달쏭한 취지의 변"이라고 도발 수위를 높였다.
당내에서도 황 대표의 행보를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른바 '타이밍이 생명'인 정치판에서 출마 지역 관련 논의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바람에 이미 효과가 반감됐다는 지적이다.
당내 한 수도권 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당락을 떠나 이제는 타이밍이 늦어서 정무적으로 볼 때 신선함이 떨어졌다"며 "'수도권 험지'라고 애매하게 말해 놓고 다른 지역들이 거론되는 마당에, 이제 와서 종로로 간다고 해도 무슨 감동을 줄 수 있겠냐"고 말했다.
황 대표의 '종로 출마' 논란으로 인해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보수통합과 당내 물갈이 등 산적한 현안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당은 새로운보수당, 시민단체 등을 포함한 보수대통합을 추진 중이지만, 황 대표의 출마 여부와 지도체제 구성 등을 두고 막판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기점으로 분열됐던 보수세력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선 구심점이 되는 제1야당 대표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종로 출마 논란을 계기로 황 대표의 위상이 떨어지며 힘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내에선 집단 반발 움직임도 감지된다. 공관위가 당내 공천과 관련해 TK 지역을 겨냥 '50% 이상 물갈이' 등을 심심찮게 언급하자, TK 현역 의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황 대표는 이같은 당의 방침을 전달하고 의원들을 달래기 위한 차원에서 4일 TK 지역 의원들과 비공개 회동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총선 승리를 위해 TK 지역의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당 지도부 인사들의 희생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험지 출마를 선언한 황 대표가 말 그대로 사지(死地)로 먼저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야 의원들이 반발할 명분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날까지 불출마를 선언한 당내 의원 13명 중 TK 현역은 정종섭(초선‧대구동구갑) 의원이 유일하다. 황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인사들의 솔선수범이 보여주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당내 TK 지역 초선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지도부에선 TK를 마치 개혁의 대상인 것처럼 말을 하는데 지역에서는 '우리가 무슨 한국당의 식민지냐'는 말까지 나온다"며 "당이 필요할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TK를 이런 식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황 대표의 정무적인 선택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전략적 조언을 해주는 참모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당대회에서부터 친박(친박근혜)계의 도움을 받아 당권을 쥔 황 대표가 일시적 모면책 위주의 조언을 수용하면서 이용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