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극복했던 '짠한 스토리텔링'이 부각돼 각별한 관심을 끌었지만 초기부터 거론됐던 그의 사생활 문제가 끝내 그를 '초고속 로그아웃'으로 이끌었다. 아니, 데이트 폭행과 불법 촬영이 계속됐다는 전 여자친구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사생활을 넘어 범죄 영역에 해당할 수 있다.
우려의 시선은 애초부터 적잖았다. '그때 그 꼬마가 이렇게 멋있게 자랐구나' 하는 감동 외에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강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원씨 자신도 '왜 꼭 원종건이어야 하는지' 설득하기를 주저했다.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기 위해 정치를 한다"는 답변만으로는 정치적, 정책적 역량이 증명될 리 없었다.
그런 우려에 기름을 끼얹은 건 뒤늦게 회자된 한 온라인 게시판 글이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측으로부터 동시에 영입 제안을 받았다는 글이 과거 원씨 소속회사 익명게시판에 올라왔던 것. 그가 직접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에는 "조건과 대우가 다른 것 같다. 혹시 이쪽 부분 잘 아시는 분 계시냐"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그가 두 당이 추구하는 가치나 노선보다는 그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을 찾아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르는 이유다. 어쩌면 두 당이 어떻게 다른지, 그게 본인의 소신이나 철학과 어떻게 결부될지 애초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깜짝쇼'에 능한 민주당은 그런 원씨를 외부에서 수혈해 '총선용 땔감'으로 이용하는 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지기반이었지만 최근 균열이 생긴 20대 남성, 이른바 '이남자'를 공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흐뭇해했던 건 이 때문이었을 게다.
이제 원씨가 영입인재 자격에 사표를 던졌으니 정치권에선 관련 논란은 언제나 그랬듯 '과거형'이 될 전망이다. "원종건이 미래다(이해찬 대표)"라던 민주당도 사생활 검증 실패에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원씨 역시 체면은 많이 구겼으나 "넘어지면 아프겠지만 또 도전하면 된다"던 영입 당시 자신의 말을 실현하면 그만일 수 있다.
하지만 '청년 정치' 자체에 생긴 생채기는 어쩌나. 일련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정치 꿈나무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실정치 입문을 목표로 기성 정당 언저리에서 차근차근 역량을 쌓아가던 당직자, 보좌진, 청년단체 구성원 등은 이번에도 그저 허탈감을 토로할 뿐이다.
문제는 정당 내부에 인재양성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미리 발굴해서 키우는' 개념이 짧은 우리나라 정당사에선 아직 익숙지 않다. 선거철마다 '통합'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이합집산 과정에서 자꾸 정당이 사라지고, 만들어지길 반복하다 보니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그 시스템을 만들 유인도 크지 않았다.
이렇게 가치나 철학, 노선, 이해관계 등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당장의 화제성만 추구할 경우 정당은 제 역할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원종건씨와 민주당, 둘 다 서로를 이해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끊임없이 받는 지적, 즉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여성 정치도 마찬가지다. 남성 일색이던 정치권에 그동안 수많은 여성이 진출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젠더 이슈를 둘러싸고 최근 3~4년 동안 급격하게 바뀐 인식, 그 날카로운 잣대를 정치권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번 논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떻게 거기까지 검증할 수 있겠냐'는 항변도 일리는 있지만 젊은 사람들, 특히 20대 여성들이 이번 논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초기부터 파장을 예측할 만한 징후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50~60대 남성이 이끄는 검증 과정에 이들처럼 감수성 예민한 '프로불편러'들이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꼭 사찰까진 아니더라도 심층 인터뷰 등 더 적극적인 검증이 가능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준연동형 비례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당이 청년이나 여성 이슈를 더 적극적으로 담아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각 당의 경직된 문화와 시스템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당사자성을 살리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또다시 '땔감'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하나씩 고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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