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70평생 살아보니 베토벤 이해돼"

덕수궁 석조전에 퍼진 정경화의 열정

정경화가 21일 오후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정경화와 함께하는 덕수궁 신년음악회'에서 연주하고 있다.(사진=문화재청 제공)
"귀가 멀기 시작한 서른둘 바로 그해에 베토벤은 기가 막힌 작품을 썼습니다. 아름답게 노래하다가 갑자기 천둥이 들이치는데, 어릴 땐 '어쩌란 말이지?' 어리둥절했어요. 근데 70평생 살아보니 너무 이해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세계적인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곡 소개를 했다.

초록색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그녀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살짝 기침해도 돼요"라며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은 정경화의 곡이었다.


관객에게 웃는 얼굴로 곡 소개를 조목조목해주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을 지긋이 감고 엄숙한 표정으로 곡에 몰입해 엄청난 파워를 보여줬다.

베토벤의 열정과 정경화의 열정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21일 서울 덕수궁 석조전 중앙홀. 약 38평(전용면적 124㎡)에 불과한 공간에 130여명이 모인 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2)와 피아니스트 김태형(35)의 연주가 한시간 30여분동안 펼쳐졌다.

문화재청이 마련한 '정경화와 함께하는 신년음악회'에는 장애인, 다문화가족, 문화재지킴이 단체 관계자들이 초청됐다.

석조전은 1910년 완공됐으며, 고종이 피아니스트 김영환의 연주를 들었다고 전하는 장소로 지금은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쓰인다.

"제 속에서 나오는 음악이 여러분 인생 어딘가에는 닿을 수 있기를"

모차르트 소나타 21번 마단조 연주에 앞서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하게 이 곡만 단조예요. 스물두 살 때 연주 여행을 갔다가 갑자기 어머니를 잃고 쓴 곡입니다. 나는 여덟 살 때 이 곡을 연습하면서 '참 예쁜 곡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연을 알고 나니까 이 미뉴에트가 어떤 감정을 머금고 있는지 비로소 알겠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거장의 세월의 깊이가 그대로 느껴지는 말이었다.

"저는 (작곡자의) 메신저일 뿐입니다. 제 속에서 나오는 음악이 여러분 인생 어딘가에는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객 곳곳은 기립박수하며 '브라보'와 '앙코르'를 외쳤고, 정경화는 크라이슬러가 작곡한 '사랑의 슬픔'과 '사랑의 기쁨'을 들려주기에 앞서 "슬픔을 먼저 받으시겠습니까, 기쁨을 먼저 받으시겠습니까?"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일제히 "슬픔요!"가 터져 나오자 귀에 익은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이 석조전에 울려퍼졌다.

역시 세계적인 거장다운 연주와 무대매너, 그리고 열정을 보여준 보기 힘든 공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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