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라는 점에서 보수통합 성사 여부 등에 따라 잠룡들의 원내 입성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 잠룡으로 꼽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의원, 한국당 소속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현재 총선 출마 의지를 밝힌 상태다.
◇ 수도권 출마 압박 받는 황교안·유승민…보수통합 변수
지난해 2월 전당대회에서 당 수장으로 선출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황 대표는 아직 원내 경험이 없지만 보수진영 유력 대선주자로 꼽힌다. 때문에 황 대표 입장에선 이번 총선에서 원내 입성과 동시에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다져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황 대표는 출마 지역에 대해 줄곧 "당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고 말을 아끼고 있지만, 당초 비례대표 출마가 검토된 바 있다. 그러던 중 황 대표는 지난 3일 장외집회에서 '수도권 험지' 출마 카드를 던지면서 여권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총리와 '종로 빅매치'가 유력해지는 분위기다.
황 대표의 수도권 출마 카드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국면을 거치며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이 불가피해진 동시에 당내 중진들의 선당후사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당 대표가 본진에 해당하는 한국당을 두고 비례정당으로 이동하는 게 부담스럽고, 당내 지도부 및 중진들의 '수도권 험지' 출마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보수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황 대표의 발언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미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했지만 지역구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비례대표 출마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통합 신당이 창당되면 경우에 따라 전략적인 선택의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 읽힌다.
새보수당 유 의원의 출마 지역도 관심사다. 유 의원은 아직까진 자신의 현 지역구(대구 동구을) 출마를 고집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지역구 민심이 사나워졌지만,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심판을 받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선 보수통합 신당이 창당되면 유 의원은 자연스럽게 수도권 출마로 가닥이 잡히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선후보인 유 의원이 통합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보수 강세 지역인 대구를 떠나 수도권에서 중도층 확장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다.
유 의원 입장에서도 중도‧보수층 표심을 기반으로 원내 입성할 경우, 대선 가도에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통합이 불발될 경우엔 수도권 출마의 명분이 약해질 수 있어, 오히려 대구에서 정면 승부를 치를 가능성도 남아있다.
홍 전 대표와 그동안 대구와 자신의 고향인 경남 창녕 출마를 저울질하다 최근 밀양·의령·함안·창녕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당에서 요청한 수도권 출마 요구를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택한 셈이다.
15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서울 동대문을 지역에서 16‧17‧18대에 걸쳐 내리 3선을 기록한 홍 전 대표가 수도권을 떠나 총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전 대표는 PK(부산‧경남) 지역 총선 승리를 이끌어 2022년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은 이같은 선택을 한 홍 전 대표에 대해 컷오프(공천배제)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수도권 전략지역' 출마를 지도부급 인사들에게 권유했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는 홍 전 대표와 같은 사례를 용인하는 순간, 전체 전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도부급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초재선과 원외 인사 등 그 누가 모험을 감행하겠냐는 지적이다.
보수통합도 변수다. 통합신당이 창당될 경우엔 단일 전선이 형성되면서 홍 전 대표의 존재감이 약해져 압박의 강도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통합이 불발될 경우엔 각자도생으로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인지도에서 강점이 있는 홍 전 대표에게 유리한 구도가 펼쳐질 수도 있다.
홍 전 대표는 24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당에서 부당에게 나를 제거하려고 달려들면, 그런 명령에 승복이 가능하겠냐"며 "나는 무소속 출마를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컷오프로 나를 제거하는 게 가능한지 한번 두고 보자"고 말했다.
김 전 지사도 자신의 고향(경남 거창)이 포함된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구 출마 의지를 밝힌 상태다. 거창군수 출신인 김 전 지사는 18‧19대 총선에선 경남 김해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 전 지사는 지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공천 파동 책임을 지고 20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 때는 한국당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했지만 민주당 김경수 지사에게 패했다. 김 전 지사는 당시 후보 기근에 시달리던 한국당의 권유를 수용, 불리한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선전했다는 평이다.
김 전 지사도 정치적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이번 총선에선 국회 입성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잠룡 수도권 차출에 응할 경우,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때문에 고향에서 재기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 전 지사 역시 보수통합 신당이 출현할 경우, 당 안팎의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김 전 지사의 컷오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전 지사는 이날 통화에서 "이미 작년 8월부터 고향에 내려와 여기서 다시 시작하기로 주민들과 약속 후 활동하고 있다"며 "경남지사 출마 등 그동안 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희생해 온 만큼, 이번엔 당도 제 목소리를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김병준 비대위원장 시절인 지난 2018년 말 진행된 당협위원장 교체 과정에서 서울 광진을에 자리를 잡았다. 광진을 지역은 당시 여당 대표를 지냈던 추미애(5선) 의원이 버티고 있어 여야 거물급들의 빅매치가 예상됐다.
그러나 추 의원이 지난해 말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오 전 시장과 맞대결을 펼칠 상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중도층으로 확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오 전 시장에게도 이번 총선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정세균 의원(현 국무총리)과 종로에서 맞붙은 오 전 시장은 39.2% 득표에 불과, 52.6%를 얻은 정 의원에 큰 격차로 패했다. 당시 오 전 시장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왔던 사전 여론조사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터라 충격이 더 컸다는 후문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해 2월 당 대표 선거에도 황 대표에게 패하며 2위를 기록, 정치적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다. 때문에 이번 총선에 사실상 정치 생명이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 전 위원장은 잠룡 중에선 당의 '수도권 차출' 요구에 응한 인사다.
김 전 위원장도 당초 고향(경북 고령) 인근인 대구 수성갑 지역 출마를 검토했지만, 지난해 말 김세연 의원 등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자 수도권 출마로 선회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하는 등 보수 잠룡 중에선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그만큼 당내 기반이 허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이 수도권 출마 의지를 밝힌 만큼, 당에선 여권 후보와 격전지에 김 전 위원장을 '자객 공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수도권 험지로 간다고 선언한 이후, 제 마음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며 "다만 당이 얼마나 혁신할지 지켜보고 있는데, 모든 가능성은 다 열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과 김 전 위원장은 불과 몇백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기도 하는 수도권에 출사표를 낸 만큼, 보수진영이 대통합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