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은 23일 오전 최 비서관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최 비서관은 검찰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라고 3차례 소환통보를 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최강욱 비서관측은 "23일 기소는 서울중앙지검장의 결재가 없는 '날치기 기소'"라는 입장이고, 수사팀은 "검찰총장의 지시로 전결한 적법한 기소"라고 맞서고 있다.
최 비서관측 하주희 변호사는 "검사장(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수사팀의) 항명"이라고까지 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대학살로 비유되는 '1.8 검사장급 인사'때 대검과 파열음을 낸 것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 명을 거역했다"며 '항명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최강욱 기소'를 3번이나 주문했는데, 이를 묵살한 것은 '항명'일까? '소신'일까?
항명(抗命)은 말 그대로 "(상관의) 명령이나 제지에 따르지 아니하고 반항함. 또는 그런 태도"를 뜻한다. '검찰 항명'은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역사를 바꾸어놓기도 했다.
◇ 양석조 대검 반부패·강력부 선임 연구관 "당신이 검사냐"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로 꼽자면 이른바 '상갓집 항명'을 들 수 있다.
검사들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말이 "네가 검사냐"라는 질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대검찰청 검사의 한 장인상 빈소에서 후배검사가 이 말을 직속상관에게 던졌다.
지난 18일 양석조 대검 선임연구관이 새로 부임한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게 이같이 따져 물었던 것. 당시 심 부장은 공공연히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건을 두고 무혐의로 처리해야 한다고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수사를 기획·조정했던 양 선임연구관이 "조국이 왜 무혐의인지 설명해봐라"는 취지로 거칠게 항의한 게 이른바 '상갓집 항명 사태'다.
법조계에선 이 사태를 두고 후배검사의 단순한 하극상이 아닌 외부 영향력에 맞서 수사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게 중론이다.
심재철 부장은 추미애 신임 법무장관의 청문회 준비단에 속했다가, 추 장관의 '1.8 검사장급 인사'에서 일약 검사장으로 승진해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부임한 인물이다.
엄격한 검찰조직에서 항명사태는 이례적이지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이와 비슷한 검찰 내 대표적인 항명의 역사를 25일 짚어봤다.
◇ 윤석열 "사람에게 충성않는다"...'최강욱 기소' 갈등과 '비슷'
박근혜정부인 2013년 윤석열 검찰총장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지시로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윤 당시 팀장은 상관이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결재 없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 이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소장을 변경한다고 신청하기도 했다.
이후 윤 당시 팀장은 수사팀에서 배제되고 여주지청장으로 좌천당했다. 그리고 같은해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윤 당시 팀장은 수사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수사 초기 법무부와 검찰의 수사외압이 있었다"며 "영장 청구 등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 "상관의 위법한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최근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를 두고 일선 수사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갈등과 겹쳐보이기도 하다.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비리 의혹을 수사중인 송경호 3차장검사는 지난 22일 최 비서관을 기소하겠다는 보고서를 올렸지만 이 지검장은 결재하지 않았다. '최 비서관 소환조사 없이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정작 최 비서관은 검찰의 소환 통보를 3차례나 무시한 상황이었다.
이후 윤 총장이 직접 최 비서관 기소를 지시했고 송 차장검사는 전결로 공소장을 법원에 넘겼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날치기'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감찰 가능성까지 언급한 상태다.
◇ 2012년 대검 중수부 폐지 개혁안에 검사들 집단반발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가 직무 관련 기업과 다단계 사기범으로부터 약 10억원의 금품을 챙겼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이 일었다. 얼마 후 현직 검사가 집무실에서 자신이 조사중인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연달아 터지면서 검찰 조직이 뒤흔들렸다.
역대급 추문이 이어지자 한상대 검찰총장은 강도 높은 개혁을 하겠다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극심한 내부 반발이 일었다. 최재경 중수부장이 대검 회의에서 폐지 반대를 주장했고 총장 퇴진설까지 일었다.
한 총장은 최 부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했고 감찰 착수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도록 했다. 최 부장이 김광준 부장검사에게 "법에 어긋난 일을 한 적 없다고 하라"는 조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 부장을 비롯한 검찰 내부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채동욱 당시 대검 차장과 검사장급 검사들이 직접 한 총장을 찾아가 용퇴를 요구했다. 서로 고성이 오고가는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이후 한 총장은 "개혁안을 발표한 후 사표를 쓰겠다"고 퇴진 의사를 밝혔지만, 청와대가 한 총장 사퇴 쪽에 손을 들어주면서 한 총장은 취임 15개월만에 검찰을 떠나게 됐다.
◇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안 반발에 집단 항명
2011년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 조직의 집단 반발이 있었다.
당시 이귀남 법무장관과 김준규 검찰총장이 서명한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수정하면서 검찰 내에서 집단 사의표명이 이어졌다.
당시 법사위는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 중 제196조 3항을 일방적으로 수정했다. 해당 규정은 검사 지휘의 범위를 법무부령으로 정하기로 한 부분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바꾼 뒤 통과시킨 것.
이를 두고 검찰은 "사법경찰이 자기가 원하는 것만 지휘를 받겠다"는 뜻이라며 지휘체계 붕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홍만표 당시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비롯해 검사장급 간부 5명 전원과 간부들이 잇따라 집단사퇴 의사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평검사들도 평검사 회의를 소집해 집단사퇴를 논의하며 대열에 동참했고, 실제로 일부 검사는 사의를 밝히기도 했다.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조정된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됐고 검찰 내부에선 책임론이 부상해 김준규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