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 없는 아이들의 '집'…청소년쉼터의 명절나기

'가출청소년'으로만 아시나요…가정 복귀 어려운 경우도 많아
명절음식 준비, 세배, 덕담나누기…"처음 해봤다"는 아이들
명절에도 쉼터 찾는 아이들 있어…6명의 선생님이 주·야간 지켜

가정 밖 청소년들이 설을 앞두고 쉼터 선생님들과 명절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대전여자단기청소년쉼터 제공)
"집에서는... 새엄마랑 새엄마의 자녀들과 같이 살았어요. 같이 음식도 못 만들고, 끼지 못하고, 전 늘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았어요."

은서(19·가명)가 털어놓은 집에서의 명절에 대한 기억은, 흔히 설 하면 떠올리는 모습들과는 조금 달랐다.

지글지글 전을 부쳐 같이 먹고,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경험을 은서는 '청소년쉼터'에 온 뒤 처음 마주했다고 한다.


"선생님들께 세배를 드리고 선물을 받을 때 너무 좋았다"며 환히 웃던 은서는 쉼터에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을 '가족'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같이 모이고 떠들고 웃은 건 처음이에요. 진짜 가정이... 이런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가족이 생겼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 이름은 쉼터지만 '돌아갈 곳 없는 아이들이 머무는 곳'

청소년쉼터는 가정 밖 상태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안정된 공간을 제공하고 상담·치료와 보호 역할 등을 하는 시설이다. 청소년 보호기간과 유형에 따라 현재 일시 쉼터, 단기 쉼터, 중장기 쉼터 등으로 나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으로 약 130곳의 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름은 쉼터지만 이곳을 찾은 아이들 중 '잠시 쉬었다 떠날 수 있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스스로 집을 나온 가출청소년들로만 여겨지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고 했다.

대전여자단기청소년쉼터의 황다금 상담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등을 통해 다양한 청소년들이 오는 곳"이라며 "돌아갈 곳이 없거나 집이 아예 없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서 진행한 실태 조사에서 단기 및 중장기 쉼터에 거주 중인 청소년들의 가출 원인으로는 가정폭력, 학대로부터 집을 떠난 '생존형'이 가장 많았다(단기 36.4%, 중장기 40.1%).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방임형' 또한 각각 12.8%와 20.9%로 뒤를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쉼터에서는 단지 머물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리상담을 비롯한 치유 역할도 하고 있으며 가정 복귀가 어려운 청소년의 진학 또는 자립 방안까지도 함께 고민하고 마련하고 있다.

가족의 정이 강조되는 명절이면 이런 청소년들의 외로움이 더 커질까, 청소년쉼터의 선생님들은 분주해진다. 두부전이며 깻잎전, 동그랑땡, 산적꼬치 등 군침 돌게 하는 냄새가 쉼터에 가득 퍼지고 청소년들도 모처럼의 명절 기분을 느낀다.

"아이들이 가정 밖으로 나왔지만... 여느 가정에 있었으면 충분히 참여했을, 그리고 경험했을 것들이잖아요.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에 누군가와 맛있는 것을, 또 좋은 말을 나누는 경험과 의미를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쉼터 선생님들에게 세배를 하는 가정 밖 청소년들의 모습. 흔히 하는 경험들로 여겨지지만 쉼터에 와서 처음으로 해봤다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사진=대전여자단기청소년쉼터 제공)
◇ 아이들의 '집'…명절에도 24시간 대기하는 선생님들

명절은 극적인 화해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쉼터에 머물던 아이들 중 일부는 부모와 청소년 모두 오랜 기간 상담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명절을 통해 가정 복귀의 기회를 도모하기도 한다고 했다.

반면 명절은 또 다른 청소년들을 가정 밖으로 밀어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황다금 상담원은 "저희가 명절기간 동안 문을 닫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라며 "명절에 가정 밖으로 나오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다. 상시대기조로 아이들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전여자단기청소년쉼터는 이번 명절에도 24시간 쉼터의 불을 끄지 않는다.

가정에서 밀려나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던 이들에게 유일한 '집'이 돼준 쉼터의 상황은 녹록지는 않다.

"6명의 상담원이 주·야간 돌아가며 근무를 하고 있는데 새벽에도 병원이나 경찰서를 다급히 가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야간 당직자는 쉼터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집에 있던 선생님 한 분이 뛰쳐나오는 거죠... 쉬는 날에도 늘 핸드폰을 붙잡고 있어요."

다양하고도 소외된 청소년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유일한 공간. 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꾸준히 나오는 지적임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안정적인 근무가 어려운 사정이다보니 쉼터 아이들에게는 사회에서 겨우 정을 붙인 어른과 '이별'을 반복하게 되는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집에서 받았어야 할 온기와 사랑을 쉼터에 와서야 느껴봤다고 말한다. 가정 밖 청소년의 규모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2018년 여성가족부 조사에서는 연간 가정 밖 청소년을 약 11만2000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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