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 시행 1주일…여전히 죽음 부르는 공사 현장

인천서 새해 들어 5명 사망
노동계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강화만 능사 아냐"
"시한폭탄 같은 현장 구조 개선 병행돼야"

전국건설노동조합 경인지역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인천 남동구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공사현장 추락사망사고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제공=전국건설노동조합 경인지역본부)
안전과 관련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이른바 '김용균법'이 지난 16일부터 시행됐지만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천 지역에서는 새해 첫 달부터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로 노동자들이 잇따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달 들어서만 벌써 5명의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 노동력을 쥐어짜는 현장 체계…처벌 강화만 능사가 아냐

전국건설노동조합 경인지역본부(이하 건설노조)는 23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건설 현장 사망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인천 남동구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연달아 발생한 사고는 행정 당국과 건설 업체가 그동안 얼마나 안이한 생각으로 건설현장의 사망사고에 대해 접근했었는지 보여주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건설노조는 모든 작업이 도급화된 건설 현장에서 안전 수칙을 지키라는 것은 기만적인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매일 좀처럼 지키기 어려운 정해진 물량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이를 지켜야만 돈을 지급하는 지금의 건설현장 체계에서는 물량 압박으로 건설노동자 스스로 위험한 작업 상황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건설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지금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사업주 책임 강화했는데…이달 들어서만 5명 사망

지난주부터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게 주내용이다.

사업자가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를 기존에 지정했던 위험장소 22곳에서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고, 위반할 경우 처벌 수준도 기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했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재발할 경우에는 가중 처벌되고,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 부과하는 벌금 상한선도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상향됐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개정된 법도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고, 최근 인천에서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인천에서 이달 들어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5명에 이른다.

전날 오후 1시 37분쯤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대형쇼핑몰 공사장 5층에서 작업하던 A(50)씨가 아래로 추락해 머리 등을 크게 다쳐 그 자리에서 숨졌다.


A씨는 공사 중인 건물 외벽에 근로자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철골로 설치한 임시 구조물 발판을 지나다가, 갑자기 발판이 기울면서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철골로 된 발판에 나사가 헐겁게 조여져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공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 21일에는 인천 서구 원당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일용직 근로자 B(26)씨가 아파트 24층 외벽에서 추락해 숨졌다.

사고 당시 B씨는 아파트 외벽에서 거푸집 해체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 인천북부지청이 해당 현장에 공사중지명령을 내렸고, 사업주의 과실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인천 남동구의 한 오피스텔 공사현장 주차타워 14층에서 레일 설치 작업을 하던 C(59)씨가 10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지난 3일 연수구 송도의 한 절삭공구 전문 제조업체 사옥·연구소 신축공사장에서는 2.9톤짜리 타워크레인이 쓰러져 노동자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 시한폭탄 같은 현장…처벌 강화를 넘어 구조 개선 병행돼야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전국에서 산업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667명이고 이 가운데 추락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272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40.1%를 차지했다.

공사 현장 규모로는 5~49인 사업장에서 278명(41.7%)이 숨져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그러나 건설노조는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사망사고가 대부분 대기업이 시행한 건설현장이었다는 점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산업재해 예방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제도의 이행 상황을 엄격하게 점검하고, 사업주에 대한 엄정한 법적 대응과 건설현장 안전관리 감독을 처절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광득 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 노동안전국장은 "건설현장은 시한폭탄과 같다"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운 좋게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고 안전이 강화됐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폭탄을 잘 해체해야 위험이 사라지듯 처벌 강화뿐만 아니라 현장 구조도 개선하는 게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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