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충성경쟁서 전두환 뺀 이유요?"

[인터뷰] 영화 '남산의 부장들' 연출 우민호 감독
"내면 들여다보며 쌓이는 차가운 긴장감에 방점"
"전두혁 캐릭터,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려 애썼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사진=쇼박스 제공)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이 벌어지기까지 40일을 담아낸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마주한 우 감독은 "들뜨지 않은 시선으로 캐릭터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차가운 긴장감이 쌓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며 "(당시 암살사건에 연관된) 그들이 숨겨 왔을 감정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막상 파헤쳐 보면 권력을 쥔 저들과 평범한 우리는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속해 있는 곳의 사이즈는 서로 다를지라도 감정의 근원은 같을 테니까요. 친구들 우정도 그렇잖아요. 둘일 때는 잘 모르다가도 셋이 되면 어느 한 친구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저 친구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가 다른 친구랑 더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배신감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듯이요."

결국 "경쟁심리와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 암살사건이 벌어진) 궁정동 안을 휘감았다"는 것이 그의 추론이다.

극중 최고 권력자 박통(이성민)을 가운데 두고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과 청와대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벌이는 충성경쟁을 촘촘하게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듯이 그 일그러진 충성경쟁의 끝은 나락이었다.

우 감독은 "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10·26사건은 뚜렷한 대의나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벌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인의 균열, 파열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라며 "그 감정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충성·배신·존경·사랑·시기·질투 같은 보편적인 감정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봤다.

그가 이 사건을 거시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인물 내면의 심리를 통해 미시적으로 파고드는 역공법을 택한 데는 이러한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그 결과물은 10·26을 역사의 한 장면으로 박제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우리네 주변을 둘러보도록 돕는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킨다.

"제가 영화를 뜨겁게 만드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그걸 억누르려고 몹시 노력했어요. (웃음) 동명 원작 논픽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원작이 지닌 정신, 흥분하지 않고 냉철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자는 뜻이었죠. 등장인물들에게 가명을 붙인 이유요?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고 싶었거든요.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다루지만, 그들의 내면과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실명을 쓰기에는 부담이 컸어요."

◇ "최고 권력자에 버림받는 2인자들 '한몸'…제어할 수 없는 권력의 속성"

우민호 감독(사진=쇼박스 제공)
흥미롭게도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가운데 내면을 다루지 않은 유일한 캐릭터가 있다. 당시 보안사령관을 지낸 전두혁(서현우), 바로 현실의 전두환 씨다. 그 이유를 묻자 우 감독은 "그의 내면은 별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역사적인 사실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려 했던 캐릭터입니다. 감정을 다루기보다는 그가 당시 어떠한 역할을 했고, 10·26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거든요. 엔딩 장면 역시 그가 비정상적으로, 불법적으로 권력의 1인자 자리에 앉았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죠."

이 영화 속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과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을 두고 우 감독은 "사실 한몸"이라고 설명했다.

"두 캐릭터 모두 최고 권력자에게 쓰임 당하고 결국 버려지는 2인자라는 점에서 한 인물로 비쳤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군인 출신으로서 복장을 중시하는 둘이, 공통적으로 구두마저 벗겨진 자기 발을 내려다보는 장면 등은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나'라는 허무함을 포착하려는 장치입니다. 이 장면들이 두 캐릭터를 데칼코미니로 만들었으면 했어요."

그는 "극중 최고 권력자 박통을 보면서 '권좌에서 내려올 시기를 놓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며 "이미 폭주하는 기관차가 된 상태에서 이를 제어할 힘이 그에게 없었다는 점에서 끝은 이미 예고돼 있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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