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폐지 가격 하락 일로…또 쓰레기 대란?

국산 폐지 가격 ㎏당 68원, 2018년 폐비닐 쓰레기 대란 당시 65원과 비슷
폐지 줍는 노인들도 하루 1만원 벌기 힘들어…정부, 유통구조 개선 추진

(사진=자료사진)
설 연휴를 앞둔 지난 월요일 저녁.

허리가 구부러진 70대 할머니가 주택가 골목길에 쌓여있는 종이박스를 소형 손수레에 바쁘게 싣고 있다.

"이거? 일(폐지 수거) 끝나고 집에 가다 보니 있길래 가져가려고 정리하는 거지."

예전에는 종일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넘기면 2, 3만원 벌이는 충분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폐지는 요새 킬로그램당 30원씩밖에 안쳐줘. 예전엔 100원씩 했는데 말이야. 손수레에 가득 싣고 가면 4, 5천원씩은 했는데 요즘은 힘들어. 2천 원이야, 2천 원."

국내 폐지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폐지 줍는 노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 손수레 분량의 폐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3, 4시간이 걸리는데, 현재 가격으로는 온종일 모아도 1만 원을 벌기 힘든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자 한 여당 의원은 급기야 지난 연말 폐지 수거 노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국내 폐지 가격 하락은 폐지 수거 노인의 수입에만 영향을 미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 대란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국내 재활용 수집업체는 폐지를 수거해 제지업체에 팔아 수익을 남긴다. 이 수익을 위해 수집업체는 가정에서 배출하는 폐비닐 등은 거의 덤으로 수거해 간다.

국내 폐지 가격이 떨어질 경우 재활용 수거업체의 수익도 떨어지게 되고 결국은 폐비닐 등 수익구조가 떨어지는 폐기물은 수거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지난 2018년 서울과 수도권의 폐비닐 쓰레기 대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말이다.


대표적 폐지인 폐골판지 국내 가격은 현재 킬로그램당 68원으로, 폐비닐 쓰레기 대란 직전이었던 지난 2018년 4월의 65원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는 또한 지난 2017년 킬로그램당 130원의 절반 수준이기도 하다.

(사진=자료사진)
국내 폐지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것은 2018년부터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폐지수거업체 모임인 '한국제지원료재생업협동조합'의 안주형 이사장은 "국내 제지공장 수요의 20% 정도를 중국에 수출해 왔는데, 이게 막히면서 국산 폐지가 공급과잉 상태로 되다 보니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기에 국내 제지업체들도 국산 폐지 대신 가격이 싼 수입 폐지를 사들여 오면서 국산 폐지 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산 폐지 가격은 국산 폐지의 80% 정도며 일본산 폐지는 70% 정도에 불과하다.

폐지 수입이 늘고 국산 폐지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자 정부는 지난해 4월 폐지수거업체와 제지업체 등과 함께 폐지 수입 등을 자제하자는 협약서를 맺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폐지 수입은 계속됐고 국산 폐지 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맺은 협약은 선언적이었고 진도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산 폐지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수입 폐지보다 여전히 비싸면서 국산 폐지는 더욱더 외면받고 있다.

안 이사장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은 폐지를 버리는 사람이 돈을 낸다"며 "하지만 OECD 국가 가운데 한국만 유일하게 폐지를 버리는 사람이 돈을 받는 구조다 보니 국산 폐지 가격이 수입 폐지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국산 폐지 가격이 2018년 쓰레기 대란 당시의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지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22일 정부와 주요제지업체, 재활용 수거업체 등과 협약을 재차 맺고 제지업계를 통해 국산 폐지 2만 톤을 긴급 선매입해 비축하기로 했다.

또한 국산 폐지의 질을 높이기 위해 유통과정도 개선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산 폐지 수익이 떨어지면서 예전의 유통과정을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며 "국가정책이 들어가 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구체적인 대책은 국내 폐지 활용 연구용역을 통해 검토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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