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이란과의 외교 관계는 의외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파병시 국회 동의가 이번과 같은 경우에도 필요한지 여부를 두고서는 당분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 "이란, 한국 입장 이해하고 있다"… 한국-이란 외교는 일단 '안심'
정부는 독자 파병을 결정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IMSC(국제해양안보구상·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여하지는 않고, 청해부대가 우리 군의 지휘를 받아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는 방침을 21일 밝혔다.
미국이 원하는 호르무즈 해협 방위 기여를 거절하기는 어렵지만, 이란과의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 또한 감안해야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미·한미일·한일 외교장관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많은 경제적인 이해관계(stake)가 걸린 나라들은 다 기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다"고 미국 측의 요구를 전했다.
그보다 며칠 전인 지난 8일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관계를 알지만, 한국은 이란과의 관계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며 파병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었다.
샤베스타리 대사는 "일본도 독자적으로 자국 상선을 보호하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아닌 아덴만에서 하겠다고 한다"며 "우리는 지금 미국과 경제전쟁까지 벌이고 있는데, 한국이 미국 편에 서서 호르무즈 파병을 한다면 이란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변했다.
이같은 이란의 입장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IMSC에 참여하지 않고, 활동 계획에도 '우리 선박만' 보호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올 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하면서 이 지역의 전운이 고조됐기 때문에, 자칫하면 외교 관계는 물론 우리 국민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판단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이란 측과도 접촉해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며 "이란 측은 결정을 이해한다며 이란의 기본적인 입장을 설명해 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핵심 당국자는 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 측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에 외국 군대의 선박이 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보호 그리고 국익에 필요하다는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도 1차적 반응으로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우리는 한국과 이란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이란도 같은 입장이었다"고 부연했다.
더욱이 지난 8일 새벽(현지시각) 테헤란 상공에서 추락해 탑승자 176명 전원이 사망한 우크라이나 여객기의 사고 원인이 이란 정부의 '격추'로 판명되면서, 이란이 국제 사회에 적극적인 의견을 펼 수 있는 입지가 좁아진 것도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연구센터장은 "이란 측에서 굉장히 환영하진 않을 테지만, 북핵 문제나 한미동맹 등 한반도 의제를 신경쓸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을 생각해서 이 정도면 대체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이란 측에서는 일본이 독자적 파병을 결정했을 때 내심 환영을 했었다"며 "민간 학술 교류에서도 이란 측은 한국이 이런 독자적 (파병) 결정을 해 주길 은근히 바라는 듯했었고, 한국과 이란 간의 외교에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아덴만을 원래 파견 지역으로 삼고 있던 청해부대의 작전 환경이 바뀐다면 국회의 동의 절차가 필요한지를 두고서는 또다른 논란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60조 2항은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국회는 지난해 12월 10일 본회의에서 청해부대의 파견 연장안을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켰는데, 이 연장안은 파견 지역을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일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조건을 붙여 급박한 상황 등이 생길 경우 다른 해역으로의 파견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했다.
일단 국방부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며 "(파견 연장안에) '유사시'라고 돼 있기 때문에 (지금이) '유사시'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도 아덴만에서 작전하다가 2018년 리비아 사태 때 청해부대를 파견해 우리 국민 철수와 같은 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다"며 "이와 유사하되 임무는 동일하고 작전범위가 확대된 것으로 보면 된다. 즉 '파견 지역'을 확대한다는 의미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안규백 의원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소속의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반면, 야당들은 대체로 국회 동의 자체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교민 안전, 원유 수송의 전략적 중요성 등을 감안할 때 파병은 불가피하다"면서도 "파견 지역·임무·기간·예산 변동에 대한 국회 동의 절차 부분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국익을 최대한 고려한 선택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청해부대 임무·작전 범위 변경은 국회 비준 동의가 꼭 필요하다"고 했고, 새로운보수당 권성주 대변인도 "민감한 사안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에 대한 정부의 고뇌를 알기에 이번 결정 자체는 존중한다"면서도 "국회 동의를 얻는 절차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김종대 수석대변인은 "파병을 국회 동의도 없이 '파견지역 확대'라는 애매하고 부정확한 절차를 통해 감행하는 정부의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며 "국익과 안전을 위협하는 파병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 또한 "파병은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하는 일이고 전통 우방인 이란을 적대하는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며 "국회 동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왕건함의 호르무즈 해협 파견은 한편으론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란과 미국간 군사충돌에 연루될 위험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회색지대(grey zone) 사태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은 정치적인 판단의 문제이고,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지 여부는 결국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엇갈리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