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코트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리고 핀 조명이 코트 위를 비쳤다.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듯한 분위기가 연출됐고 관중의 몰입도는 최고조를 달했다. 주인공은 '농구대통령' 허재 전 국가대표 감독의 두 아들, 허웅과 허훈이었다.
허웅과 허훈은 KBL 올스타전에서 상대팀 선수로 만났다. 형제애가 남다른 둘은 경기 초반부터 티격태격 몸싸움을 벌였다. 형 허웅이 1쿼터 막판 동생 허훈을 상대로 1대1 공격을 준비하자 KBL은 아예 판을 깔아줬다. 특수 조명으로 둘의 맞대결 장면을 부각시켰다.
관중의 뜨거운 호응 속에 형제는 제대로 맞붙었다. 허웅은 동생을 골밑까지 밀고 들어가 득점을 성공했다. 관중석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체 조명이 다시 돌아왔고 허훈이 3점슛으로 반격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형만한 아우없었다.
19일 오후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올스타전은 올스타 선수 뿐만 아니라 10개 구단 선수들이 모두 자리한 가운데 시종일관 유쾌한 장면과 컨텐츠로 가득 했다.
2쿼터 들어 팀 김시래의 캡틴 김시래와 팀 허훈의 주장 허훈이 나란히 심판복을 입었다. 장난기가 많은 김시래와 허훈은 이날 하루만큼은 허락된 편파 판정(?)을 거침없이 시도했다.
김시래는 심판복을 입고 들어오자마자 팀 허훈의 간판 라건아에게 공격자 파울을 줬다. LG에서 한솥밥을 먹는 캐디 라렌이 골밑슛을 시도할 때는 주저없이 슛 동작 반칙을 불어 자유투 2개를 선언했다. 팀 허훈의 이정현이 항의하자 곧바로 테크니컬 파울을 줬다.
허훈도 심판복을 입고 반격(?)했다.
이정현이 3점슛을 던지는 순간 허훈은 곧바로 슛 동작 반칙을 선언했다. 최준용을 비롯한 팀 김시래 선수들이 항의했지만 묵살했다. 허훈은 팀 허훈에 유리한 판정을 끌어내기 위해 비디오 판독을 제안했다가 동료 심판들의 제지로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정규리그 경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지만 이날만큼은 심판으로 변신한 양팀 주장의 재치있는 행동에 팬들은 많은 박수를 건넸다.
올시즌 올스타전은 허훈, 최준용, 송교창, 양홍석 등 젊은 스타들이 KBL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우뚝 선 무대다. 팬 투표에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은 라이징 스타들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자세로 올스타전 무대를 수놓았다.
베테랑도 지지 않았다. 마지막 올스타전이라는 각오를 품은 전태풍은 선수 소개 때 오토바이를 타고 코트에 입장해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창원 LG 구단의 인기도 대단했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팬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선 현주엽 감독과 LG 선수들은 누구보다 뜨거운 함성을 받았다.
김동량이 2쿼터 막판 김현민을 상대로 연거푸 포스트업 공격을 시도하자 팬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최준용은 놀 줄 알았다. 김동량이 공격을 시도할 때 함성을 유도하는 세리머니로 코트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3쿼터 때는 허훈을 필두로 선수들이 줄지어 제임스 하든을 연상케 하는 유로스텝 퍼레이드 영상을 패러디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종규의 화려한 덩크와 팀을 가리지 않는 코트 위 동료들의 리액션으로 특별한 세리머니의 대미를 장식했다.
'감전' 퍼포먼스도 있었다.
원주 DB 김종규는 정규리그 경기 도중 심판을 속이는 헐리우드 액션으로 빈축을 산 경험이 있다. 마치 감전을 당한 것처럼 넘어져 휘슬을 끌어냈다. 이후 김종규는 반성했고 올스타전 퍼포먼스로 승화시켰다. 최준용에게 장풍을 날려 쓰러뜨린 김종규는 감전당한 연기를 펼친 최준용을 뒤로 하고 화려한 속공 덩크를 선보였다.
10개 구단 사령탑의 자유투 대결도 코트를 뜨겁게 달궜다. 소속팀 감독이 자유투를 던질 때마다 선수들이 코트에 몰려나와 응원전을 펼쳤다.
이대성은 달랐다. 지난 시즌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유재학 감독과 자유투 대결을 펼쳤던 이대성은 유재학 감독이 자유투를 던질 때 앞에서 펄쩍 뛰며 방해했지만 결과는 2개 모두 성공. 이대성은 쑥스러운듯 웃었다.
현역 시절 '컴퓨터 가드'로 불렸던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은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쳐 아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인천에서 열린 프로농구 경기 사상 가장 많은 9,704명(종전 최다 9,094명)이 올스타전을 지켜본 가운데 팀 허훈이 팀 김시래를 123대110으로 눌렀다. 승부의 무게를 잠시 내려두고 선수들의 개인 기량과 예능감을 마음껏 뽐낸 흥겨운 잔치였다. 김종규는 양팀 최다 31득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