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한국 영화 삼파전…코미디 vs 정치 드라마

참신한 소재·B급 감성 '미스터 주', '히트맨'
웰메이드 정치극 '남산의 부장들'

정초 극장가에 코미디 열풍이 불까, 아니면 묵직한 정치 드라마 바람이 일까. 설 연휴(24~27일) 대진표가 확정됐다. 한국 영화 삼파전이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와 '히트맨', '남산의 부장들'이 이달 22일 동시 출격한다. 이 가운데 2편이 코미디 영화다. 새해를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은 관객들을 노린다. 작년 설 연휴 때 초대박을 친 '극한직업' 학습효과 덕분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중장년층 관객들의 많은 선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근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사건을 다루면서도 첩보 영화 못지않은 긴장과 재미를 주는 웰메이드 영화다.

배우들 연기 변신도 관전 포인트다. '미스터 주'에서 원맨쇼 코믹 연기를 펼친 이성민은 '남산의 부장들'에선 VIP역으로 양극단의 연기를 오간다.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역시 '백두산' 속 북한 요원 리준평의 잔상을 완전히 지운다.


◇ 시도는 좋았는데…'미스터 주: 사라진 VIP'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말하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익숙한 소재지만, 한국 영화로서는 새로운 시도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이성민). 승진 욕심에 중국에서 온 특사 판다 밍밍의 경호를 자처한다. 그러나 밍밍을 탈취하려는 범죄 조직을 쫓다가 사고를 당하고, 깨어난 순간부터 동물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태주는 군견인 셰퍼드 알리와 공조해 사라진 밍밍을 찾아 나선다.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정작 코미디 영화의 본분인 웃음 타율은 높지 않다. 작정하려 웃기려 들면 들수록 번번이 빗나간다. 과장된 연기와 허술한 스토리 때문이다. 주연을 맡은 이성민이 어떻게든 극을 살리려 고군분투한다. 한데, 감초 역할을 맡은 배정남이 매번 찬물을 끼얹는다. 열심히 하는 데서 오는 안쓰러움은 관객 몫이다.

'쓰앵님' 연기 톤을 반복하는 김서형, 영화 '7번 방의 선물'로 연기 천재로 불린 아역 배우 갈소원, 악역을 맡은 데이비드 맥기니스 등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배우 문제가 아니라 연출력 탓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말을 하는 다양한 동물들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구현했다. 총제작비 90억원으로 이룬 결과다. 많은 노하우를 지닌 할리우드 수준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한국 영화 소재를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동물 목소리는 신하균, 유인나, 김수미, 이선균, 이정은 등 쟁쟁한 배우들이 참여했다. 1천만명에 달하는 반려동물 인구와 가족 관객이 타깃이다. '재심' '또 하나의 약속'을 연출한 김태윤 감독 신작이다.

◇ B급 감성 가득한 '히트맨'

대놓고 B급 감성이다. 유튜브와 웹툰, 랩과 같은 젊은이들 취향과 아재 개그를 정신없이 오가며 혼을 쏙 빼놓는다. 멀게는 '킹스맨'부터 권상우가 주연한 '탐정' 시리즈까지 여러 영화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국정원 요원 덕규(정준호)에게 발탁돼 암살 요원이 된 수혁(권상우).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루려 국정원을 탈출한다. 15년이 흐른 지금, 그가 연재하는 웹툰에는 온갖 악플이 달린다. 돈벌이도 시원치 않아 아내의 구박에 시달린다. 괴로워하던 수혁은 랩 가사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보라는 딸의 조언에 따라 술김에 국정원 시절 겪은 1급 기밀을 웹툰으로 그린다. 이 웹툰은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만, 그는 국정원과 테러리스트의 이중 타깃이 된다.

초중반까지는 꽤 참신하다. 수혁의 과거사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대목이나 수혁이 그린 웹툰을 재현한 장면에선 눈길이 오래 머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 전개도 궁금증을 끌어낸다. 액션과 생활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권상우와 모처럼 코믹 영화로 돌아온 정준호의 호흡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초반에 너무 힘을 쏟은 탓일까. 수혁이 이중 타깃이 된 뒤부터 극은 갑자기 동력을 잃고 갈팡질팡한다. 통쾌함과 재미는 사라지고 어이없는 전개와 대사가 그 자리를 메꾼다. 클라이맥스에선 경쟁이라도 하듯, 배우들 너나 할 것 없이 고함을 지르는 통에 정신이 사나워질 정도다. B급 감성에 관대한 청소년들이 주된 관객이 될 듯하다. 총제작비는 99억원, 손익분기점은 240만명이다.

◇ 웰메이드 정치극 '남산의 부장들'

오랜만에 나온 웰메이드 정치 드라마다. 한국 근현대사의 한 토막을 스크린에 옮겼다.

'내부자들' '마약왕'을 잇는 우민호 감독의 이른바 '욕망' 3부작 완결편이다. 김충식 작가가 쓴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정치공작 등을 자행한 중앙정보부 18년을 통해 박정희 정권을 조명한 책으로, 분량만 880쪽에 달한다.

그중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까지 40일간 이야기를 다뤘다. 실존 인물들은 극 중 김규평(실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김형욱), 경호실장 곽상천(차지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18년간 충성해온 김규평이 왜 총성의 주인공이 돼야 했는지를 그의 시선과 심리를 따라가며 짚는다.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만큼, 영화 역시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동기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10ㆍ26 사건이 있기 40일 전,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박용각이 미국 청문회에 출석, 유신 정권의 실체를 폭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를 막기 위해 김규평과 곽상천이 나서고, 수뇌부 권력 지형에도 변화가 생긴다. 서열 2위였던 김규평은 곽상천과 충성 경쟁에서 번번이 밀리며 정치적 수세에 몰린다. '코리아 게이트' 등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한 가운데 김규평은 정권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부마민주항쟁 대책을 놓고 대통령과 빚은 마찰은 그의 '결심'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권력다툼,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 장기독재에 대한 환멸, 애국심 등 그가 총을 쏘게 된 동기가 복합적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뜨거운 역사를 차갑고 냉철하게 그렸다. 그렇다고 재미를 놓친 것은 아니다. 미국과 한국, 프랑스를 오가며 숨 가쁘게 전개되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한편의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하다. 다 알려진 이야기지만, 인상적인 화면 구성과 음악,편집으로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배우들 연기가 명불허전이다. 이병헌은 눈빛과 표정만으로 관객을 설득시킨다.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자주 잡히는 이유다. '박통' 역의 이성민, 박용각 역의 곽도원, 곽상천 역의 이희준은 실존 인물과 겹쳐 보일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등장과 동시에 웃음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인물도 있다.

영화는 정치색을 가급적 배제하고 인물간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췄지만, 소재 자체가 정치적인 만큼 스크린 밖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70년대 시대상을 구현하느라 208억원(손익분기점 500만명)의 제작비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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