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변호사시험 석차 공개하라…경쟁 투명성·공정성 제고"

헌재 위헌 결정에도 법무부가 석차 공개 안해…변호사, 행정소송 제기해 승소

법무부가 변호사시험의 개별 석차를 비공개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김정중 부장판사)는 정건희 변호사가 법무부를 상대로 "변호사시험 석차를 공개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지난해 제8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정 변호사는 법무부에 자신의 석차를 공개해달라고 신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 조항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국회에서 이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석차를 제외한 성적만 공개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법무부는 "석차를 공개할 경우 법학전문대학원의 특성화 교육이나 학점 등 다양한 요소는 고려되지 않은 채 획일적 기준으로 능력이 평가된다"며 이처럼 석차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석차를 공개하면 성적에 따른 서열화 등 기존 사법시험 제도의 폐해가 다시 나타나고, 로스쿨의 교육과정도 이에 따라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변호사시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는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법조인의 역량'을 충실히 평가하면 달성할 수 있는 것일 뿐, 석차 공개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봤다.

재판부도 "성적과 달리 석차는 상대적 성취도를 부각하므로, 로스쿨 제도의 특성화 교육이 유명무실해질 우려는 있다"고 인정했다.

응시자가 더 나은 석차를 얻기 위해 변호사시험 준비에 치중하거나 로스쿨 사이에 상위권 합격자를 배출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지는 등 폐단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 우려만으로 객관적 변호사시험 업무에 현저한 지장이 발생한다는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그런 우려가 일부 현실화하더라도, 이는 로스쿨의 충실한 교육 등으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오히려 재판부는 "변호사시험의 서열화나 로스쿨 특성화 교육의 형해화 등 문제는 본질적으로 낮은 합격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학생들이 로스쿨 교과 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기보다는 변호사시험 준비에 몰두하는 경향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이므로 석차를 공개하는 것은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현재 변호사시험을 순수한 자격시험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변호사시험이 의사 국가시험처럼 실질적으로 자격시험으로 운용된다면 석차가 큰 의미를 갖지 않고, 이를 공개하라는 욕구도 크지 않을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자격시험이 아닌데도 석차를 비공개함으로써 자격시험의 요소를 갖추고자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또 "현재 여전히 출신 로스쿨에 대한 명문대와 비명문대 등 편견에 따라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석차를 공개해 경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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