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예기치 못한 장마"…경력단절 예술인이 전한 생생한 목소리

경력단절을 읽는 새로운 시선…'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테이블'
열악한 예술가의 현실 속에서 여성이 겪는 경력단절 극복 어려워

9일 오후 열린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 테이블' 토론회 현장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여성 예술인으로서 살아가다 마주치는 출산이라는 것은 예기치 못한 장마라고 생각해요. 수심이 깊은 강이 생겼고, 강에 징검다리가 있는데 이를 하나하나 건너 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빠른 기차를 타고 가다가 완행 열차를 탄 느낌도 들구요." - 남정애 영상감독

#. "오디션을 볼 때 경력사항의 빈 부분에 대해 질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애를 낳았다고 답을 하니 말이 없어지더라구요. '당당하게 애를 낳았다고 하면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뒤통수를 맞았어요. 나는 자랑스럽고 나를 성숙하게 만든 일이고 예술가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장애'라 생각하는 지점이구나 하는 좌절감이 들었어요." - 유정민 연극 배우 및 작가


#. "전시에 초대되어 갔을 때 아이가 있다고 하면 특이점, 약점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상황들이 있어요. 시댁에 가면 전업주부인 양 예술가 정체성을 부인하고, 학부모 모임에 가도 예술가 정체성을 감춰요. '저 엄마는 굉장히 바쁜데 예술가래. 어떻게 돈을 벌까' 같은 질문이 나오면 답하는게 길어지고… 저를 파편화 시키면서 살아오고 있는 것 같아요." - 조미영 시각예술가

#. "아이를 낳고 활동을 쉴 수가 없어서 특수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 강사일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 케어 활동을 하는 분들은 모두 경력 단절에 40, 50대 여성이더라구요. 이 분들이 받는 급여는 완전 최저시급 수준인데, 이런 일을 많은 여성들이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 최선영 시각예술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토론회 '성평등 예술지원정책 제3차 오픈테이블'에서는 경력단절과 관련한 여성 예술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성평등예술지원소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된 이번 토론회는 강윤주 성평등예술지원소위원회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발표자로 나선 영상, 연극, 시각 분야 4명의 예술가들은 현장에서 느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력 단절과 관련한 애로 사항 등을 전하며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들은 특히 가뜩이나 열악한 '예술가의 현실' 속에서 '여성'이 겪는 '경력단절'은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으로 존재하며 주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예술인 복지재단 등의 지원으로 도움을 받은 경험을 소개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는 지원 정책과 가시 행정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생계를 위한 재정 문제 해결 △경력단절 여성의 복귀를 위한 재교육 비용 지원 △단절된 인적 네트워크 지원 △아이를 갖고 있는 예술가의 사업 참여 확대 등의 지원 제도를 제안했다.

또한 지원 제도를 여성 예술가로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이 유입될 수 있는 제도로의 개편이 필요하다면서 예술이 갖고 있는 핵심 요소인 다양성 회복을 위해서도 정책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이날 경력 복귀 지원 정책 제안 발표자로 나선 최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정책확산 전략실장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예술인이 경력을 유지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공감하면서 "현재 경력단절 기본계획에 문체부는 없고 양성평등담당관이 생겨났지만, 여성인력에 대한 업무까지 포괄하지는 못하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력 설계와 관련된 멘토링 프로그램 설계 고려 필요성 △보육 여건 확충에 대한 다층적인 고민의 필요성 △교육훈련 프로그램 생성 및 체계화 △경력단절 예술인들이 육아를 하면서 작품 활동 할 수 있는 기회 제공 △각종 문화예술지원사업에 경력단절여성창작지원 프로그램 도입 △여성관리제 목표제 실시 필요성 △성 주류화 조치 함께 추진 등 7개의 항목으로 정책 설계 추진을 주문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문화체육관광부 송윤석 예술정책과장은 "경력단절이라는 주제는 정책하는 입장에서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복지재단이나 몇몇 정책들의 도움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오늘 말씀 주신 것들에 대해 정책과 제도와 사업적인 측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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