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예고된 파문…갑을 뒤바뀐 '이상한 관행'

올해 수상자들 수상 거부 잇따라
불합리한 저작권 양도 계약 반발
시대착오적 관행…"터질 게 터졌다"
"을이 갑을 압도하는 이상한 계약"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 일부(사진=문학사상)
불합리한 저작권 양도 계약 조항에 반발한 작가들의 수상 거부 사태를 부른 '이상문학상' 파문이 번지면서, 갑을 관계가 뒤바뀐 시대착오적인 출판업계 관행이 결국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인다.

출판 저작권 분야 전문가로 유명한 김기태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는 7일 CBS노컷뉴스에 "원칙적으로 계약은 당사자들 사이 합의로 이뤄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출판계에서는 줄곧 출판사가 일방적인 계약서를 내밀고 저자가 그것에 사인하는 관행이 계속되다 보니 이번 사태까지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김금희·이기호·최은영이 해당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주최측인 문학사상사가 수상작에 대해 '저작권 3년간 양도' '작가 개인 단편집 게재 금지' 등을 요구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김금희는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어제 모 상(이상문학상)의 수상후보작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일차적으로는 기쁜 마음이었다. 그런데 오후에 계약서를 전달받고 참담해졌고 수정요구를 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기에는 내 단편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며 "심지어 내 작품의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고 다른 단행본에 수록될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하자 표제작으로는 쓰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글쎄, 내가 왜 그런 양해를 구하고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파문이 번지자 문학사상사는 지난 6일 예정됐던 수상자 공개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오는 20일 수상자 발표 계획도 무기한 연기했다. 매년 1월 내놓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발간 역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 "무명작가 책 내기 힘든 구조…출판계 입맛대로 계약서"

이번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파문은 그간 출판계 계약 관행을 돌아봤을 때 이미 예고된 사태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기태 교수는 "수 년 전 이른바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제정해 '갑'인 저작권자와 '을'인 출판권자 양쪽이 공정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항을 담았지만, 출판계가 이를 자기들에게 불리한 계약서로 인식한 탓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표준계약서를 활용하기보다는 (출판계가) 입맛대로 고친 뒤 자기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맺는 식으로 관행을 여전히 이어가면서 이번 문제까지 불거졌다. 출판계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가 내포됐던 셈이다. 명성 없는 작가들의 경우 책을 내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 속에서 책을 내는 데 초점을 두다보니 계약 내용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분쟁이 생기면 결국 남는 것은 계약서 밖에 없는데, 이 경우 작가들이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계약에 있어서 저작권자가 갑이고 출판사는 어디까지나 을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관행은 을이 갑을 압도하는 상황"이라며 "저작권자들 역시 굳이 저작권법이 아니더라도 본인 권리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계약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가 그러한 경종의 단초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순수 문학·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저작권을 명예에 기초한 권리 정도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법적으로 주어진 권리라는 인식을 별로 안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저작권자들이 저작권법에 기초한 자기 권리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활용하기를 바란다. 공익성이 강한 성격의 이용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되, 상업적 목적이 분명한 경우에는 자기 권리를 확실하게 행사해서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탄탄한 저작권 기반 사회가 돼야 한다."

지난 1977년 제정된 이상문학상은 김훈·이문열·이청준·최인호·한강 등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해 왔다.

문단의 기대주들이 연이어 수상을 거부하는 이번 사태 앞에서 이상문학상 역시 권위 실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주최측인 문학사상사는 물론 출판계 전체가 불합리한 관행을 극복할 수 있는, 원칙에 기초한 합리적인 계약 체계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작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딱 하나다. '문학적인 성과를 드높이는 상이라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이참에 '계약은 양 당사자가 원만하게 합의에 이르렀을 때 맺어져야 한다'는 원칙으로 돌아가서, 작가들과 출판계가 허심탄회하게 서로 의견을 조율해 알맞은 계약서를 만든 뒤 그것에 기초해 수상자 발표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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