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외교 전선에서 활약해 왔던 인물들 가운데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재등장한 인물도 있고, 갑자기 포착되지 않거나 포착됐는지 여부 자체가 확실치 않은 인물도 있어 교체설도 제기되고 있다.
◇ '냉면 목구멍', '배 나온 사람' 발언 리선권, 8개월만에 포착… 실제 변동 여부는 아직 수수께끼
맨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이른바 '냉면 목구멍'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리선권이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우리나라 통일부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방)로, 리선권은 조평통 위원장직을 맡아 왔다.
그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던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핀잔을 준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어 10.4 공동선언 11주년 기념식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을 가리켜 '배 나온 사람한테는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발언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국회 정보위원장 이혜훈 의원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김영철의 교체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4월 24일 밝혔다. 국정원은 김영철의 교체 시점과 관련해 "4월 13일 이후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직전에 있었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실패로 그가 교체됐다는 분석이 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리선권이 해임됐다는 추측 또한 일정 부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리선권이 12월 29일 방송된 조선중앙TV의 전원회의 보도에서 회의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일단은 계속 모종의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그가 조평통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30일 "리선권이 조평통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앉아 있는 위치를 봐도 직위 변동으로 추정할 만한 근거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물러났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애시당초 해임 자체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리선권이 복권되고 장금철이 통전부장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장금철의 경우에는 전원회의 보도에서 포착됐는지 여부 자체를 두고도 서로 다른 분석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외교 라인 고위급 인사 2명 포착 안 돼… 쇄신일까, 고령에 따른 은퇴일까
외교 라인에서는 2명의 고위급 인사가 전원회의 보도에서 사라졌다. 북한의 외교를 총괄하는 외무성의 수장인 외무상을 맡던 리용호와 노동당 외교 담당 부장을 맡던 리수용이다.
리용호는 지난해 8월 23일 담화를 내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의 제재 유지 관련 발언을 맹비난했다. 리수용은 지난해 12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되,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빼고 "재앙적 후과를 보기 싫거든 숙고하라"며 그에게 '로켓맨'과 같은 발언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신문은 정치국 위원에 리일환, 리병철, 김덕훈이 보선(대체해 임명)됐고 이 세 사람을 포함한 10명이 당 중앙위 부장으로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이 10명 가운데는 김형준 전 러시아 대사가 포함됐기 때문에, 그가 노동당 국제부장을 맡던 리수용 대신 해당 직책을 맡게 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통일부 추정에 따르면 노동당 내 전문 부서의 부장은 15명 안팎인데, 그 가운데 10명 이상이 교체 또는 이동된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리수용의 자리에 김형준이 임명됐다고 분석하며 "당 전문부서 인사 대폭 개편을 통해 국가적 정책지도역량을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일단 김형준은 이번 인사로 당 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부위원장, 당 중앙위 위원을 함께 맡게 됐다. 북한의 중요 우방국인 러시아 대사를 맡았던 그가 외교 관련 중책을 맡게 됐을 것이라는 예상도 이번 인사를 통해 가능하다.
만약 리용호와 리수용이 교체된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인사 쇄신을 통해 외교 전선에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리수용은 올해로 만 80세가 되는 등 고령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은퇴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일부 김은한 부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리용호의 교체 여부에 대해 "기념사진에서 식별되지 않았다"면서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서열 3위 박봉주, 4일간 사라졌다가 건재 확인… '최고 존엄' 옆 휠체어 타고 사진
북한의 권력 서열 3위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노동당 부위원장,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등을 맡은 박봉주는 나흘간 포착되지 않았다가 사진에서 모습이 드러났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 27일 박봉주가 상원시멘트연합기업소 현지 시찰을 나간 사실을 보도했지만, 정작 다음 날부터 시작된 전원회의 보도에서는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의 직위를 감안하면 전원회의에서 주석단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2015년엔 인민무력부장을 맡던 현영철이 4월 27~28일 열린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이틀 뒤인 30일쯤 처형된 사례가 있었다.
박봉주는 이날 조선중앙TV 보도 영상에서 휠체어를 탄 상태로 자리를 잡은 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포착됐다. 때문에 그가 건강이 좋지는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만 기념사진에서 그의 위치가 북한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바로 옆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직위에 큰 변동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