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보험사 빌딩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은 폭 3미터에 길이 200쯤 되는 도심 빌딩숲속의 사잇길이다.
주로 화이트컬러, 사무직 직원들이 많고 깔끔할 것 같은 이곳이 일반의 예상을 깨는 '너구리 골목길' 오명을 쓴 지 오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시도때도 없이 골목길 곳곳에서 담배를 피워대기 때문에 낮시간에는 흡연자들이 내뿜는 담배연기로 자욱한 경우가 많다. 이 곳을 종종 들르는 시민 이 모씨는 "업무를 보기 위해 간혹 들르게 되는데 골목길을 걸어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답배연기가 자욱해 이제는 아예 대로변이나 반대편길을 우회해서 다닐 정도로 불편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증권가 골목길에는 마땅한 흡연공간을 찾지 못한 수많은 증권사 직원들이 담배를 피기 위해 몰리면서 늘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냄새가 진동해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청이 이런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골목길은 빌딩들이 소유권을 가진 공지로(사유지) 이뤄진 길이어서 단속권한이 없다.
끊이지 않는 민원에 영등포구청은 우선 2018년 말 조례를 개정해 공개공지와 연면적 5000㎡ 이상 대형 건축물 등의 사유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골목길을 둘러싼 9개 빌딩을 일일이 돌며 간담회를 진행했다. 면담 설득과 함께 증권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금연구역 지정 설문조사도 벌였다. 80%찬성이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흡연자가 줄어들어 다수의 비흡연자들이 피해를 입어온 이유도 있지만 정작 담배를 피는 흡연자들 조차 매일마다 자욱하게 담배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이 좋아 보이진 않았던 것.
영등포구청의 지속적인 설득에 빌딩 관계자들은 증권가 골목길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데 동의했고, 2020년 1월 2일부터 악명높은 증권가 골목길은 금연구역으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곳에서 담배를 피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을 내야한다.
전체 거리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대신, 한화손해보험빌딩과 오투타워 앞 등 2곳에 흡연부스를 만들었다. 여의도 증권사에 근무하는 권모씨(42세,남) "담배 피우러 가는 길이 좀 멀어지긴 했지만, 비흡연인들을 위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그동안 악명 높았던 너구리굴이 이제는 흡연인과 비흡연인의 상생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