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김덕기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홍제표 > 경자년 새해 첫날인데 어느 때보다 북한 신년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위협삼아 거론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었지만 비핵화 협상 시한은 어제자로 지나갔고, 앞으로 남은 것은 북한의 이른바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북한이 이례적인 마라톤 전원회의를 통해 그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놓기도 했습니다. 전례에 따른다면 조금 뒤 오전 9시이나 정오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발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 4개를 뽑아봤습니다.
◆ 김덕기 > 벌써부터 궁금해지는데 첫 번째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 홍제표 > 대미협상 중단을 선언하느냐 여부입니다. 북한이 스스로 설정한 연말 협상시한이 지나간 이상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입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는 등 지난 한 해 미국과 힘겨운 협상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에 결별을 선언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북한의 지난해 신년사를 보면 하노이 회담에 걸었던 기대와 그에 비례하는 좌절감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들어보시죠.
"역사적인 첫 조미수뇌상봉과 회담은 지구상에서 가장 적대적이던 조미관계를 극적으로 전환시키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들의 핵·미사일 실험 유예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며 양국관계의 빠른 전진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미국에 제재해제나 안전보장을 더 이상 간청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체신만 깎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식이든 미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조금 전 북한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어제 끝난 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 수록 강대해지는 북한 위력 앞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 김덕기 >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할지도 관심일 텐데 이건 어떻게 전망됩니까?
◇ 홍제표 > 사실 가장 관심인 부분이죠. 북한의 '새로운 길'이 핵·미사일 도발을 재개하느냐 여부와 등식처럼 여겨지기도 했었으니까요. 대미협상을 중단하고 미국과 결별한다면 논리적으로는 핵·미사일 실험 중단 약속을 계속 지켜야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북한은 2018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선제적 조치로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아직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당 전원회의 2일차 회의에선 '자주권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이며 공세적인 조치'가 언급됩니다.
시험 재개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죠. 다만 의도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채 원론적 입장만 밝힐 수도 있습니다. 굳이 먼저 패를 꺼낼 필요가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과 재선 국면을 어떻게 넘기는지 지켜본 뒤 움직여도 늦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의 결별이 진짜 결별은 아닌 셈입니다.
◆ 김덕기 > 세 번째 관전 포인트는 뭔가요?
◇ 홍제표 > 대남 메시지입니다. 북한의 역대 신년사, 또는 신년 메시지(김정일 시대에는 당보·군보·청년보 공동사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대목입니다. 지난해 신년사에선 "70여년 민족 분열사상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격동적인 해"였다고 2018년을 뒤돌아보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조건과 대가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남북관계는 '통미봉남'이 다시 거론될 정도로 크게 뒷걸음쳤습니다. 따라서 민족문제까지 미국에 내맡기는 '사대적 근성'과 '외세의존정책' 등을 운운하며 강하게 비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 나아가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 군사합의서 등의 파기 가능성을 위협하며 민족과 동맹 간 선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한미공조의 균열을 노리는 것입니다.
◆ 김덕기 > 마지막으로 네 번째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 홍제표 > 병진노선 재개 여부입니다. 북한은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결정했고 2018년 4월 전원회의에선 경제건설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압박을 지속한다면 부득불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경고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노선 전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번 전원회의가 이례적으로 큰 규모에 긴 일정으로 진행된 것도 이런 배경에섭니다. 하지만 전원회의 결과가 신년사에 반영될 것이란 전제 하에서 보면 아직까지 특별한 변화의 징후는 없습니다.
김 위원장의 종합보고가 경제, 공업, 농업, 과학·교육·보건 등의 순으로 나열되고 자주권과 안전 보장은 10개 항목 중 여섯 번째에 배치된 점으로 볼 때 평소 신년사의 어법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이 대체로 예상했던 것처럼 자력갱생과 중·러 연대, 핵무력을 통한 국방력 강화를 통해 미국 없이도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김정은 위원장은 새로운 국가 건설 목표 아래 경제건설을 앞세우면서 정치, 외교, 사상, 군사, 사회복지 모든 분야를 일신하는 청사진을 제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새로운 길'을 병진노선 복귀라고 마냥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새 길이 아니라 옛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 노선의 이름을 뭐라고 붙이든 내용상으로는 경제와 국방을 병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핵무력은 이미 완성됐기 때문에 지난해 13차례의 발사체 시험에서 보듯 재래식 신형전술무기 개발에 무게중심을 옮길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