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오른 재미교포 가수 양준일(50)은 31일 오후 1시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많은 취재진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감격이 섞인 표정으로 이 같이 말했다.
1991년 데뷔해 '가나다라마바사', '댄스 위드 미 아가씨', '리베카' 등의 곡으로 짧은 활동을 펼친 양준일은 최근 90년대와 2000년대 초 활동한 가수들의 노래가 재조명 받는 이른바 '탑골 가요' 열풍을 타고 다시금 주목 받았다. 그가 선보였던 노래와 안무, 패션 스타일 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시대를 앞서갔다는 반응을 얻으며 화제를 모았다.
미국에서 서빙 일을 하며 지내던 양준일은 그런 분위기에 힘 입어 이달 초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3'에 출연해 화려하게 컴백했고, 방송 출연을 계기로 그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이에 양준일은 지난 20일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날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리는 단독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을 통해 팬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기자간담회는 팬미팅 개최를 기념해 열렸다. 진행은 '슈가맨3' MC이기도 한 작사가 김이나가 맡았다. 양준일은 "일주일 전만해도 '서버'(server)였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나의 이미지가 아직 헷갈리는 상태"라며 "여러분이 저를 보러온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넨 뒤 약 1시간 동안 취재진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여러분이 저를 아티스트로 봐주시기 때문에 머릿속이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나의 바깥 면이 맞춰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손길이 저에게 날개를 달아주셨다.
▲팬미팅까지 열게 됐는데.
=사실 제가 대한민국을 굉장히 좋아한다. 가수 활동을 안 할 때도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에 있었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때는 다시는 한국에 안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살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내 자신을 설득했었다. 그래서 '슈가맨'도 망설였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음식점으로 전화가 와서 다른 '서버'가 받았는데 '양준일 씨가 일 하는 곳이 맞냐' '지금 한국에서 난리인데 거기서 서빙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면서 화를 냈다고 하더라. 그런 반응이 실질적으로 와 닿지가 않았다. 그랬는데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스튜어디스들이 다 알아보고, 맨 마지막에 아이와 내리는데 비행기를 청소하시는 분들까지 다 알아보셔서 무슨 일이지 싶었다. 지금은 그냥 적응하고 있다. 매일 적응하고 있다. 오늘 이렇게 많은 리포터 분들이 와주신 것도 쇼킹이다.
▲가족 및 지인 반응도 궁금하다.
=일단 저와 가까이 있었던 분들은 적응하는 시간이 저와 비슷한 것 같다. 저를 오랫동안 봤었고, 이런 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와이프도 제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슈가맨'을 통해 처음 봤다.
=그때 한국말이 굉장히 서툴렀고, 정확히 어디에 가서 도장을 찍어야 하는 줄도 몰랐었다. 누가 절 절 데리고 다니면서 몇 번은 도장을 잘 받았었다. (비자 갱신을 거부한) 그 분은 제가 직접 얼굴을 보진 못 했다. 당시 나를 데리고 간 분이 만났었고 전 밖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저랑 같이 간 분이 도장을 못 받았다면서 '너 같은 사람이 있는 게 싫대'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누군대요'라고 하니 '외국 사람이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 사람들 일을 빼앗아가는 게 싫다'고 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분이 곧 은퇴를 해서 누구를 통해 압력을 받아도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무대에 설 거면 대한민국에는 다시 못 들어온다고 해서 포기하고 나왔었다.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대한민국을 그리워했던 이유는.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여자 분들이었는데 예를 들면 노사연 누나, 민혜경 누나 등이다. 미국인들에게 받을 수 없었던 따뜻함이었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 슬프지 않은 이유는 그냥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추억이 있기에 그런 추억을 소중하게 갖고 싶고 (좋지 않았던) 해프닝들은 버리려 한다. 따뜻함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아기를 낳고 나서 당장 아기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였다. 이번 달을 넘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그냥 아기를 어떻게 먹여 살릴까라는 생각만 했다. 그래서 모든 순간순간 닥치는 대로 일을 했었다.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저도 똑같이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때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통과하면서 얻은 게 굉장히 많다. 그래서 한순간도 버리고 싶은 게 없다. 나의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 안에는 굉장히 소중한 보석이 있다. 그 보석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고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또 그게 베이스가 되어서 풀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저를 환영해주고 따뜻하게 해주시는 것 자체가 옛날의 것들을 녹여주고 잊어버리게 해주게 한다. 과거는 더 이상 절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미안한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으셔도 될 듯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잇는 고마운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감히 대한민국을 감싸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롤모델이 있었나.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었는데 오래 좋아하진 않았다. 콘서트를 딱 한번 가봤다. 엘튼존 콘서트는 거의 1년에 한번 갔었다. 콘서트를 많이 갔던 이유는 가사가 좋아서였다. 마음이 아프거나 했을 때 달래줄 수 있는.
▲'탑골 GD(지드래곤)'로 불리고 있기도 한다.
=난 그게 무슨 뜻인 줄도 모른다. '탑골'이. GD와 비교하는 것은 저는 괜찮은데 GD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누가 절 마이클잭슨과 비교하면 내가 마이클잭슨을 욕 먹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스타고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감히 GD를 양준일과 비교하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는 가수 양준일 혹은 인간 양준일의 매력은.
=사실 이 질문은 내 자신한테 물어보지 않는다. 내가 감히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걸 파악하기 시작하면 포뮬러(formula)가 나올 거 같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저를 보러오셨냐고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일단 처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게 책이다. 많은 집중을 받는 것이 양준일 머릿속에 들어있는 게 무언가 인데 그걸 글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는 키 포인트 정도를 잡을 거고 정리 해주시는 분은 따로 있을 예정이다. 두 번째는 음반이다. 제 음반이 중고시장에서 고가로 팔린다고 하더라. 예전 곡들을 재녹음, 재편곡해서 팬들이 피지컬 앨범을 가질 수 있게 해보고 싶다.
▲신곡 발표 계획도 있는 건가.
=지금은 새로운 가사를 쓰고 싶지 않고, 예전 곡들을 다시 무대에서 표현해보고 싶다. 저는 목소리로만 표현하는 건 10% 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몸으로 한다. 기존 곡들을 충분히 표현하고 난 뒤에 새로운 노래를 하고 싶다.
▲미국 생활은 완전히 정리한 건가.
=한국에 들어와서 살고 싶다. 연예 활동을 안 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살고 싶다. 지금은 그냥 그렇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저를 원하시는 동안에는 활동을 하고 싶다.
▲끝으로 한 마디.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여러분이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라고 글 잘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