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지만 푸르지 못한 존재들. 비정규직 청년들이 보낸 2019년은 어땠을까. 새해를 앞둔 31일 CBS 노컷뉴스 취재진이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섰던 '청년 전태일'들을 만나 한 해를 떠나보낸 소회와 바람을 들었다.
◇비정규직 작업치료사 김지윤씨.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일하고 싶습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1시간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30분 단위로 환자를 치료해야 했어요.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동료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렸어요"
그렇게 일했던 회사에서 5년차가 되자 회사는 이제 그만 나가는 게 어떻겠냐며 권고사직을 제안했다. 병원은 실수령액 200만원이 넘어가는 5년차 치료사 보다는 180만원 정도의 싼 값에 부릴 수 있는 저연차 치료사를 선호했다.
"당시 병원은 4번째 지점 오픈을 앞두고 있었거든요. 나는 여기서 청춘을 바쳐 일했는데 나가라고 하니 화가 치밀었죠. 선배들도 이런 식으로 밀려 나갔겠구나 깨달았어요"
김씨는 당시 동료 물리치료사 심희선씨 등과 함께 1년 반을 준비해 전국 최초로 '치료사 노조'를 만들었다. 노조와 함께한 지난 5년은 지난한 시기였다. 사측의 사내 괴롭힘, 감시, 부당 징계위 회부, 임금 삭감 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동료들과 투쟁했다. 재판과 노동위원회 회부가 이어졌고 부당해고자의 복직, 임금인상, 토요수당 복원 등 굵직한 성과를 이뤄냈다.
"아직 갈길이 멀어요. 사측이 4년 만에 시작한 대화를 파기했거든요. 사실 대화 국면에서도 소송, 징계위 회부, 업무차별 등 사측의 탄압은 계속됐어요"
그녀에게 2019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김씨는 "바뀐 건 많지 않아도 감사한 한 해"라고 평가했다. 바로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없었던 삶은 정말 끔찍했거든요. 연차가 뭔지도 몰랐고 성희롱은 난무했어요. 당장 큰 변화는 없어도 이 조직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이런 김씨의 새해 소망은 "공식적인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아 당당히 사측과 이야기하는 것"과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일하는 것" 두 가지다. 김씨는 새해에도 동료들과 함께 계속해서 피켓, 기자회견 등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비정규직 발전노동자 신대원씨, "산업 현장에서 주인으로 대우받고 싶습니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신대원(42)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신씨는 故김용균 노동자가 참변을 당한 한국발전기술에서 지난 2013년부터 일하고 있다.
신씨는 죽음의 외주화가 이어지는 현장은 아직도 그대로라고 말했다.
"아직도 고용문제가 난제로 해결이 안 됐어요. 원청과 하청으로 책임과 권한문제가 분리된 구조 속에서는 제2의 용균이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물론 설비개선이나 산업부의 안전점검 등이 이뤄지긴 하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게 신씨의 말이다. 신씨는 "거창하게 특별점검은 붙였지만 하청은 여전히 작업중지권이 없다"며 "위험하고 발암물질 가득한 현장은 개선된 것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던 신씨는 위험한 업무로 도급을 금지하거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적용대상에서 정작 용균씨의 사업장인 '전기 업종'이 제외된 일이 가장 허탈했다고 설명했다.
"산안법에 주로 적용을 받는 분야가 금속이에요. 그런데, 사실 금속 분야만 위험하고 다른 산업 전반은 덜 위험한 게 아니거든요. 특히 전기는 필수 공익사업이잖아요. 용균이가 떠난 뒤 노동연구원의 조사결과도 나오고 특조위의 보고서도 나왔는데 결국 정부는 수용하지 않은 셈이죠."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신씨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현장에는 아직도 제2의 용균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 앞으로, 뒤로 있을 용균이 또래 애들을 생각하면 참 불쌍해요. 대기업 공기업 좋다는 건 아는데 문이 좁으니까 이렇게 올 수밖에 없는거죠. 바뀌지 않으면 그 아이들에게 언제든 같은 일이 되물림 될겁니다."
신씨는 부디 내년에는 산업현장에서 '주인'으로 자리잡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주인이 되지 못하고 객(客)이되면 회사는 계속해서 그렇게 대우할 것"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이런 취지라면 차별 없이 대우받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지위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매표 업무 조다산씨 "사람답게 일하고 싶습니다"
서울 영등포역에서 여객 매표 업무를 하는 조다산(30)씨는 피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인 그의 처우는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의 처우에 훨씬 못 미친다.
"임금은 정규직의 44% 정도이고요. 복지는 아예 없다고 보면 돼요. 1년에 한번씩 철도공사와 위탁계약을 하는 구조다 보니, 철도공사가 우리하고 위탁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면 바로 잘리는 거죠."
공항철도를 거쳐 고향인 전북 군산역에서 근무하던 조씨는 2년 전 코레일이 위탁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당시 조씨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근무지를 서울로 옮기거나 희망퇴직을 하는 것 2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근무지를 서울로 옮긴 조씨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다. 조씨는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보니 집은 살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주변 친구들은 다 잘돼서 근무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 이 월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라며 말을 흐렸다. 특히, 올해부터 업무강도가 더 높아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연차랑 병가 지정휴가를 쓸 수 있게 되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한두 명이 휴가로 빠지면 다른 사람이 와서 창구를 메꿔줘야 하는데 정작 주 52시간에 걸려서 도와주지는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조씨가 속한 코레일 네트웍스 노조는 지난 9월 26부터 있었던 3일간의 경고파업과 11월 20일부터 있었던 5일간의 본파업에 참여했다. 조씨는 파업 이후 시중노임 단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던 불공정 계약이 철회되지 않겠냐는 기대를 내비쳤다.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는 그는 부디 새해에는 "인력 충원이 제대로 돼서 연차와 병가를 눈치 안보고 쓰고 싶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