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 1 (18:20~19:55)
■ 방송일 : 2019년 12월 24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박도령, 신선
◇ 정관용> 열여덟 어른이라고 하는 말 여러분 들어보셨나요? 보육원에서 지내던 청소년들이 만 18살이 되면 자립해서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육원을 나온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죠. 이런 현실에 대해서 당사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라고 하는 게 진행되고 있다고 그래요. 이 캠페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박도령 씨 그리고 신선 씨. 두 분을 오늘 스튜디오에 함께 모셨습니다. 박도령 씨.
◆ 박도령> 안녕하세요.
◇ 정관용> 어서 오세요. 신선 씨?
◆ 신선> 안녕하세요.
◇ 정관용> 두 분 다 본명이에요?
◆ 박도령> 맞습니다.
◆ 신선> 저도 본명입니다.
◇ 정관용> 보육원에서 자랐죠, 두 분 다? 보육원에서 지어준 이름이에요. 아니면 부모님한테 받은 이름이에요?
◆ 박도령> 저는 잘 몰라요.
◆ 신선> 저는 원래 9살 때까지는 부모님이랑 같이 자라서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 정관용> 그래요. 지금은 두 분은 그러면 몇 살이에요? 보육원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어요?
◆ 박도령> 저는 스물여덟이고요. 이제 퇴소한 지 8년차 됐습니다.
◇ 정관용> 신선 씨는?
◆ 신선> 저는 현재 27살이고요. 대학 졸업할 때까지 보육원에서 지내서 퇴소한 지는 3년 정도 지났습니다.
◇ 정관용> 18살 되면 나가야 되는 걸로 지금 제가 앞에 소개했는데 아닌가 봐요?
◆ 신선> 원래 법적으로는 만 18살이 되면 보육원에서 퇴소하는데요. 예외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에는 시설장의 권한으로 이렇게 여유가 된다고 하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지낼 수가 있어요.
◇ 정관용> 대학에 들어갈 경우만?
◆ 신선> 네. 대학이나 직업학교 정도에 대해서.
◇ 정관용> 그러니까 대학이나 직업학교는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돈 못 벌 거다, 공부하는 기간 동안은. 그러니 더 보육원에 있어야 한다 이거로군요.
◆ 신선> 그런데 이것도 시설마다 달라서 해 주는 곳이 있고 사정이 안 좋으면 그것마저도 연장을 시켜주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신선 씨 같은 경우는 9살 이후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보육원에서 생활을 했고.
◆ 신선> 네.
◇ 정관용> 박도령 씨는?
◆ 박도령> 저는 언제 들어왔는지 잘 모르겠고 이제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때까지 지냈죠.
◇ 정관용> 대학을 안 가셨군요?
◆ 박도령> 네.
◇ 정관용> 열여덟 어른 캠페인, 열여덟 어른 프로젝트 이렇게 이름이 붙어 있는 이건 뭐예요?
◆ 신선> 열여덟 어른 프로젝트는 이제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희가 법적으로 만 18살이 되면 보육원을 떠나야만 해요. 그래서 저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18살이 되면 보육원을 떠나서 어른이 되어야 된다고 해서 열여덟 어른 프로젝트라고 하고요. 이걸 당사자들이 보육원을 떠나온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사회에 있는 편견이면 편견, 이런 것들을 좀 더 실제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 정관용> 이게 아름다운재단하고 함께한 프로젝트라면서요?
◆ 박도령> 맞습니다.
◇ 정관용> 아름다운재단은 어떤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 신선> 아름다운재단은 원래 15년 정도부터 보호종료 아동 위해서 주거나 장학 지원을 진행하고 있었고요. 올해부터는 저와 박도령 씨 그리고 김준영 씨, 전한수 씨라고 해서 4명의 프로젝트 캠페이너와 함께 당사자, 자기들의 꿈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프로젝트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같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름다운재단은 18살에 돼서 보육원에 나오는 그런 분들을 위한 주거나 장학지원 사업을 해 왔군요. 그러다가 이번에 네 가지 프로젝트로 이 현실을 알려보자 이거네요.
◆ 신선>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럼 박도령 씨가 하는 프로젝트가 하는 프로젝트 따로 있고 신선 씨가 하는 프로젝트 따로 있어요?
◆ 박도령> 네.
◇ 정관용> 박도령 씨는 무슨 프로젝트 해요?
◆ 박도령> 저는 이제 제 직업과 관련된 연극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요.
◇ 정관용> 지금 배우예요?
◆ 박도령> 네, 배우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연극 하시는 거고 신선 씨는?
◆ 신선> 저는 제가 보육원을 떠나오면서 친구들이 자기들한테 필요한 정보들을 자기가 찾지도 못하고 이용하지 못하는 게 되게 안타까워서 3년 전부터 혼자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이런 글들을 알려주고 있었는데요. 올해 이제 아름다운 재단 만나면서 캠페인 활동하고 저는 직접 제가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실제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 때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이런 것들을 후배한테 알려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이런 편견이 잘못됐다라는 것을 좀 바꿔주려고 하는 인터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인터뷰 캠페인 그리고 후배들한테는 직접 정보도 제공하는 그런 것. 연극은 내용이 주로 어떤 내용이에요?
◆ 박도령> 연극은 이제 사람들이 보통 시설 내의 이야기들은 많이 아는데 이제 퇴소 후 청년들의 이야기는 주로 모르잖아요. 그리고 저희들이 직접 세상에 나와서 이제 발언할 기회도 많지 않았고. 그러니까 퇴소 후 청년들에 대한 세상의 외침 같은 연극이라고 보시면 돼요.
◇ 정관용> 그럼 그 연극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주인공들이 아마 퇴소 후 청년이군요.
◆ 박도령> 주인공 캐릭터들은 퇴소 후 청년들이고요. 이제 배우들은 저 빼고는 다 일반 친구들이에요.
◇ 정관용> 일반 연극배우들하고 같이.
◆ 박도령> 네.
◇ 정관용> 그런 연극을 통해서 관중들에게 이런 사람들의 현실을 알리겠다 그런 거로군요.
◆ 박도령> 편견과 선입견 이런 거에 대해서 좀 많이 바꿔주고 싶어서 연극을 만들게 됐어요.
◇ 정관용> 방금 박도령 씨가 시설 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좀 아는데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잘 몰라요.
◆ 박도령> 그래도 이제 퇴소한 친구들보다 시설 안에 있으면 후원해 주시러 오는 분들도 많고 이제는 기업에서도 후원단체들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식이나 이런 지식 같은 걸 알고 있는데 이제 퇴소를 해버리는 순간 모든 걸 다 사람들이 모르게 돼요. 얘네가 뭐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누가 뭘 하고 있는지. 그런 걸 좀 알려주고 퇴소하고 나서 저희가 받는 고충 이런 것들을 좀 알려주고 싶었어요.
◇ 정관용> 알겠어요. 당장 박도령 씨부터 얘기해 봅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가래요?
◆ 박도령> 그렇죠.
◇ 정관용> 어디로 갔어요?
◆ 박도령> 저는 이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안 가서 이제 나가게 된 거거든요. 바로 집을 구하기 힘드니까 저는 자립생활관이라고 따로 있어요. 이제는 퇴소한 친구들이 집을 구하기 힘드니까 나라에서 지정을 해 주는 자립관이라는 존재가 있는데.
◇ 정관용> 정부에서 제공하는 거예요?
◆ 박도령> 네 거기에 있다가 이제 거기도 나이 제한이 있어요. 나이 제한 다 채우고 나오게 된 거죠.
◇ 정관용> 나이 제한이 몇 살까지입니까?
◆ 박도령> 스물여섯. 스물다섯, 스물여섯 정도요.
◇ 정관용> 그사이에는 자기가 돈 마련해서 방을 한 칸이라도 얻어나가라 이거로군요.
◆ 박도령> 그렇죠, 그렇죠.
◇ 정관용> 거기에 정부 지원금 같은 거 없어요?
◆ 박도령> 거기는 지원금은 없고 이제 일반 주거만 지원해 주는 제도인 거예요.
◇ 정관용> 그리고요? 그밖에 다른 지원은 없냐고요.
◆ 박도령> 다른 지원은 아예 일체 없고요.
◇ 정관용> 제가 지금 자료를 보니까 자립정착금 500만 원이 있고 무슨 후원금이나 자립수당도 주고 뭐 이런 제도가 있던데.
◆ 박도령> 그건 이제 퇴소하고 바로 주는 제도고요. 자립정착금은 이제 500만 원이 됐는데 제가 퇴소할 때는 아예 안 주는 곳도 있고 저는 이제 300만 원을 받고 퇴소를 했거든요.
◇ 정관용> 그냥 300만 원만 딱 주고. 그러나 생활할 곳은 있고.
◆ 박도령> 그렇죠, 그렇죠.
◇ 정관용> 직업은 없었고.
◆ 박도령> 직업은 있었어요, 그 당시에.
◇ 정관용> 그래요? 뭐 어떤 일을 했어요?
◆ 박도령> 저는 이제 고등학교 때 자동차 보수도장 일을 배웠어서 그쪽 계통을 좀 일하고 있었어요.
◇ 정관용> 자동차 공업소에서?
◆ 박도령> 네.
◇ 정관용> 어떤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러면?
◆ 박도령> 제일 힘들었던 건 일단 사람들의 인식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어떤 인식이요?
◆ 박도령>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하면 이제 다 고아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보육원에 있는 친구들은 고아가 거의 없거든요. 이제 저는 고아가 맞지만 그런 인식 자체도 많이 존재하고 이제는 보육원에서 나오면 다들 좀 불쌍히 생각해요. 일반 사람처럼 그냥 청년들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우리가 좀 더 얘는 불쌍히 여겨줘야 되고 얘네는 좀 못 배웠을 거고 우리보다 좀 더 뒤처졌을 거야, 약간 이런 인식과 편견이 좀 많아요.
◇ 정관용> 보육원에 있으면서도 학교 다 다니고 그렇잖아요.
◆ 박도령> 그렇죠, 대학도 가고 다 하는데.
◇ 정관용> 그러니까. 신선 씨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이제 나왔죠? 어디로 갔어요?
◆ 신선> 저는 이제 아까도 말했듯이 정부지원제도들이 많은데요. 그 당시에 보육원을 퇴소하면 자립정착금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최대 500만 원까지 주어지고요. 그 외에도 LH라고 해서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소년소녀 가장 등 전세임대주택 지원이라고 해서 24살에 퇴소하고 곧바로 LH를 통해서 전셋집을 구해서 나갔고요. 지금은 그 연장 중에 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주거는 그렇게 해결됐고 생활비나 이런 거는?
◆ 신선> 저는 전공이 국어교육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았는데 그 돈만으로는 한 50만 원 정도 받았거든요,지원금을. 그런데 그 돈만으로는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서 저는 따로 민간재단에서 진행하는 장학사업에 신청을 했고 다행히 그걸 제가 합격하게 돼서 공부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민간장학금을 통해서 제가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 정관용> 지금 임용고시를 통과한 거예요?
◆ 신선> 아니요. 보육원에 살면서 제가 왜 사범대를 가게 됐냐면 저희 원장님께서 저한테는 너무 감사한 분이셨거든요. 그분이 이제 제가 공부를 어느 정도 하니까 기뻐해 주셨고 저도 그거에 대해서 보답하고 싶어서 좀 공부를 하다 보니까 어쩌다 보니까 제가 사범대에 들어가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퇴소를 하고 나서 혼자 있게 됐을 때 이게 정말 나를 위한 삶인가라는 고민이 됐고 그때 다른 제가 민간 장학재단을 통해서 만난 친구들이, 도령 씨도 그렇고 자기 꿈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사람들 내가 도와주고 싶다라고 하면서 그때부터는 아동자립전문가라는 뭔가 기존에는 없던 이런 시설에서 생활을 했으면서 정부 지원들. 주거나 장학지원들 잘 알고 있는 그 친구들한테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지금 그 꿈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정관용> 아동자립을 도와주는 멘토로서의 전문가.
◆ 신선> 그 역할을 하고자.
◇ 정관용> 참 중요하고 좋은 일이네요. 그런데 그걸로 돈이 안 되잖아요.
◆ 신선> 그쵸 맞아요.
◇ 정관용> 어떡하려고 그래요, 그거. (웃음)
◆ 신선> 그런데 돈이 안 되는데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 정관용> 해야 되죠. 그런데 정말 사실 이런 건 정부에서 좀 채용해야 돼, 이런 분들을. 그래서요? 누군가는 해야 되는데.
◆ 신선> 그래서 저도 고민을 하다가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니까 혼자 임용고시 준비를 같이 병행을 하고 있었어요. 공부도 하면서 블로그를 통해서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 아름다운재단에서 같이 프로젝트 진행해 보자라는 제안에 저도 이걸 통해서 저만의 포트폴리오, 아니면 좀 더 경력을 쌓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해서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요. 이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내년부터는 사회복지 쪽으로 취업이나 아니면 프로젝트를 더 진행을 해 볼까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아름다운재단에서 상근요원으로 일해도 되겠네. (웃음)
◆ 박도령> 적극 추천합니다.
◇ 정관용> 조금 아까 박도령 씨한테도 보육원을 나오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느냐 물어봤는데 신선 씨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대학까지 졸업하면서 나왔기 때문에. 그래도 어쨌든 뭐가 가장 힘들었어요?
◆ 신선>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거는 경제적 주거적 지원도 힘들기도 했는데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심리적으로 누군가한테 의지할 수 없다라는 게 되게 컸거든요. 저는 부모님이 아버지가 계시기는 하지만 뭔가 그런 시설에 살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졌고 보육원을 나오니까 누구한테 의지를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집에 큰 화재가 날 뻔했는데 그 당시에 제가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지. 이걸 이 도움을 지금 연기가 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제가 연락을 가장 먼저 한 건 대학 동기 친구였어요. 그럴 때 이제 나는 주변에 도움을 구할 어른이 없구나. 내가 이런 일들을 겪었을 때 지금은 이렇게 넘어가지만 다음에는 더 큰일이 생길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때부터 조금.. 제가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어른이 되고자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 정관용> 막막하군요, 한마디로.
◆ 신선> 그렇죠.
◇ 정관용> 주변에 어른은 없고 내가 혼자 어른이 다 되어야 되는구나 그거로군요. 아까 박도령 씨가 이야기하다가 보육원에 고아가 사실 거의 없다라고 하셨는데 그러나 보육원에서 자란다고 하는 건 어떤 부모님 가운데 한 분만 계시든 어떻든 간에 그분들이 양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보육원에서 자라는 거 아니겠어요?
◆ 박도령> 그렇죠.
◇ 정관용> 보육원을 나와도 결국은 그분들과 함께하기는 어려운 거잖아요.
◆ 박도령> 이제는 대다수는 함께 못 해도 부모님한테 약간은 안부라도 전화하고 고민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누나는 있거든요. 누나한테 어떻게 고민을 털어놓지는 크게 못하겠더라고요.
◇ 정관용> 누나하고 몇 살 차이예요?
◆ 박도령> 저 1살 차이 나요.
◇ 정관용> 뭐 비슷한데요. (웃음)
◆ 박도령> 그렇죠. 그래서 고민 털어놓을 데도 저도 많이 없었죠.
◇ 정관용> 우리 사회는 이런 청년들에 대해서 잘 모르죠, 일단 기본적으로.
◆ 신선> 많이 모르죠.
◇ 정관용> 그리고 아까 박도령 씨가 얘기한 것처럼 편견을 가지고 대하려고 하고. 그렇죠? 그리고 실제로 그 어린 친구들. 우리 신선 씨 같은 경우는 멘토로서 접해 보면 비슷해요, 고민하는 바가 다 비슷비슷해요? 어때요?
◆ 신선> 그렇죠. 제가 이번에 제 프로젝트는 신선 프로젝트, 제 이름을 따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제가 12명의 보호종료 아이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거였어요. 그 친구들을 만났을 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은 다 대부분 비슷하기는 했어요. 저희가 보육원을 살면서 고지서를 본다거나 이런 종량제봉투를 사용한다거나 그런 경우가 좀 드물거든요. 그런 경우는 선생님들이 많이 관리를 하고 이런 것들이.
◇ 정관용> 가장 기초적인 생활에 대한 거
◆ 신선> 그런 것들이 이제 막 20살, 24살 이때부터 시작하게 되면 그 친구들은 창피해서 어디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 그냥 뭔가 친구 같은 경우. 한 친구는 자기가 분리수거를 할 줄 몰라서 그냥 버렸다가 벌금을 물고 나서부터 아, 이러면 안 되는구나 그걸 누군가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다 경험하면서 배워야 되는 거더라고요.
◇ 정관용> 저는 지금 그 얘기 듣고 깜짝 놀랐네요.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 모르겠군요. 혹시 이런 건 안 돼요? 보육원을 나온 선배들이 집을 얻어 살고 있다든지 하면 후배들이 함께 거기에 가서 좀 산다든지. 이런 식으로 조금씩 연결돼가는 서로 도와주면서 이런 것 좀 안 됩니까?
◆ 신선> 지금 그래도 아동권리보장원이라고 해서 정부에서 하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공공기관에서 이제 바람개비 서포터즈라고해서 실제로 보육원을 퇴소한 그리고 가정위탁제도에서 보호가 종료가 된 친구들이 후배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멘토 역할을 같이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 서포터즈들끼리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시설에 봉사도 가고 멘토로 해서 우리가 자립할 때 어떤 것들이 있었다. 어려움이면 어려움 이런 꿀팁들이 어떤 팁들이 있다라는 것들을 이미 공유는 하고 있는데요.
◇ 정관용> 그런데 그 정도를 넘어서서 아예 이렇게 같이 산다든지 이렇게 그룹홈 같은 식으로. 이런 거는 잘 안 되나요?
◆ 신선> 제 생각에는 제가 만나본 친구들이 말하기로는 평생을 단체생활을 했는데 이게 또 나와서 같이 살고 이런 것에 실증이 나 있다라고 해요.
◇ 정관용> 그게 또 있겠군요.
◆ 신선> 그래서 사실 지금도 보호가 된 친구들 중에서도 곧 시설 나올 친구들 중에는 대부분이 단체생활에 질려서 빨리 나가고 싶어해요. 그런데 그게 나갔을 때 몇 달이고 며칠 후면 바로 이게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되곤 하죠.
◇ 정관용> 그러니까 18살 쯤 되면 보육원에서는 한 방에 여럿이 같이 쓰고 그러죠?
◆ 박도령> 그렇죠.
◇ 정관용> 그러니까 이제 혼자 살고 싶어지는군요.
◆ 신선> 맞습니다.
◆ 박도령> 자기 공간이 필요한 거죠.
◇ 정관용> 그런데 막상 나가서 혼자 살아보니 또 너무 혼자인 거군요. 딜레마입니다, 딜레마. 앞으로 정부가 또 지자체나 이런 데서 조금 공식적으로 법과 제도를 통해서 지원은 뭐가 좀 필요할지 박도령 씨부터 한번 얘기해 보세요.
◆ 박도령> 솔직히 대학생 친구들한테는 지원금이나 이런 제도가 되게 많아요. 민간단체에서도 해 주는 그런 지원금도 되게 많고요. 그런데 이제 중도퇴소하거나 저처럼 이제 꿈을 가지고 사회에 이미 취업을 한 친구들한테는 그런 제도가 해당이 거의 안 돼요. 없어요, 거의. 그냥 정말 꿈을 가지고 있는데 그 꿈을 찾아가기 많이 힘든 게 현실이죠.
◇ 정관용> 대학생 위주로만 되어 있는 지원제도. 이거 좀 개편해 달라?
◆ 박도령> 그렇죠. 저처럼 꿈을 가지고 있는데 실천을 못하는...
◇ 정관용> 연극배우 하고 싶은데, 나는. 연극인이 되고 싶은데. 거기에 맞춤형 지원은 없군요.
◆ 박도령> 거기까지는 안 바라는데. (웃음)
◇ 정관용> 그래요. 신선 씨는?
◆ 신선> 저 같은 경우에는 사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저희가 말했듯이 자립정착금도 지역별로 상의했는데 올해 들어가면서 자립정착금이 500만 원으로 통일이 되었고요. 그리고 자립수당이라는 제도도 이번에 올해 만들어졌고 또 주거 구하는데 혼자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주거지원통합서비스라고 해서 집을 구하고 그 안에서 개별 사례관리사까지 지원해 주는 지원제도들도 많아졌고 계속 개편되고 있는데요.
◇ 정관용> 그나마 다행이네요.
◆ 신선> 맞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요 근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이런 캠페인을 하거나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연락을 주시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 중에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어디에 연락을 해야 될지 몰라서 저한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저한테 만약에 정말 너무 삶이 힘들어서 우울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는데 제가 그걸 친구들한테 어떤 도움을 줘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이 친구들을 소개시켜줘야 되나, 어떻게 연결시켜줘야 되나도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심리적인 지원들이 조금 더 그 친구들을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 정관용> 그래도 없던 지원제도 같은 것들은 만들어져가고 있어서 막상 퇴소하고 살 곳이 없다. 이런 경우는 이제 없겠군요.
◆ 박도령> 그렇죠. 요즘은 많이 생겨나고 있으니까.
◇ 정관용> 그건 참 다행입니다마는 그렇다고 덩그란 방에 혼자 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그 후에 도와주는 지원책들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사회적 관심이 더 커져야 되겠죠. 알겠고요. 박도령 씨, 연극 언제 어디서 해요?
◆ 박도령> 저희는 이제 28일, 29일 신촌얘기아트시어터라고 거기에서 합니다.
◇ 정관용> 박도령 씨가 직접 무대에 서고?
◆ 박도령> 네, 제가 쓰고 제가 다 해 먹었습니다. (웃음)
◇ 정관용> 대본도 쓰셨고?
◆ 박도령> 네.
◇ 정관용> 기대하고 같이 한번 보도록 할게요. 열여덟 어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박도령, 신선. 두 분을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