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루시드폴이 반려견 위한 계좌를 개설한 이유

정규 9집 '너와 나' 발매
반려견 '보현'과 특별한 협업

가수 루시드폴(Lucid Fall, 본명 조윤석)은 얼마 전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반려견 '보현'을 위한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정규 9집 '너와 나'에 수록된 곡인 '콜라비 콘체르토'의 저작권료가 보현 이름으로 된 계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콜라비 콘체르토'는 반려견 보현의 소리와 빛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둔 이번 앨범의 테마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곡이다. 루시드폴은 보현이 콜라비를 씹을 때 나는 소리를 채집해 '그래뉼라 신테시스'(granular synthesis, 소리의 작은 단위부터 출발해 이를 배열· 가공·조합해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디지털 음악합성 기법)로 템포와 음의 높낮이를 변주, 노래로 완성시켰다.


"개들이 사과나 배, 당근 같은 걸 먹을 때 사람의 입에서 절대 날 수 없는 상쾌한 소리가 나요. 어느 날 보현이 낸 그런 소리가 굉장히 음악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녹음을 해보게 됐고, 녹음해놓은 소리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편집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치 손오공처럼 보현이 갑자기 10~20마리가 되어 콜라비를 씹어 먹으며 협주를 하는 것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냈죠. 결론적으로 전 편곡만 한 셈이에요. 그렇기에 작곡자와 연주자는 보현이기에 저작권협회에 보현을 저작자로 등록하고, 보현을 위한 계좌를 개설하게 됐죠. 향후 보현의 계좌로 들어오는 저작권료는 유기견들을 위해 쓸 예정이고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의 중심에는 보현이 있다. '콜라비 콘체르토'를 포함해 '두근두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아이 윌 얼웨이즈 웨이트 포 유'(I'll always wait for you) 등 4곡은 '보현은 어떤 마음일까'를 상상하며 만든 곡들이다. 이 중 '콜라비 콘체르토'를 제외한 3곡에는 차이, 정승환, 미즈키가 가창자로 참여했다. 나머지 수록곡 중 '길 위', '읽을 수 없는 책', '불안의 밤', '뚜벅뚜벅 탐험대' 등 또 다른 4곡은 루시드폴이 보현을 향한 마음을 풀어내 직접 가창까지 맡은 곡이며, '봄의 즉흥', '눈 오는 날의 동화', '산책갈까?', '너와 나' 등 4곡은 보현과 루시드폴을 둘러싼 것들이 영감의 원천이 된 연주곡들에 해당한다.

"올 한 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보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보현은 지금 왜 이럴까' 같은 생각을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어차피 보현은 '읽을 수 없는 책'(타이틀곡 제목이기도.)이지만, 그 덕분에 앞으로 조금은 더 관계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그게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얻게 된 것 중 하나죠. 아마 반려 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 그리고 앨범과 함께 선보이는 에세이 속에 써놓은 글들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반려 동물을 키우지 않는 분들은 어떤 면에서는 잘 모르는 세상일 수도 있는데, 크게 봤을 때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함께 이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존재간의 예의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 같은 것들이었어요. 요즘 굉장히 갈등이 많고,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를 쉽게 하는데, 어떻게 보면 반려 동물 역시 사회적 약자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루시드폴은 이전에도 깊이 있는 메시지와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앨범들을 발표해 이목을 끌었다. 2년 전에는 9평 남짓의 작은 작업 공간을 직접 만들고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녹음과 믹싱까지 도맡아 제주에서 귤 재배를 하는 일상을 그려낸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내놓았고, 4년 전에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며, 동시에 꽃, 나무, 들짐승, 물고기, 산새 등 온갖 생물들을 관찰하며 느낀 바를 동화, 음악, 사진이라는 매개체에 담아낸 7집 '누군가를 위한,'을 선보였다. 반려견 보현과의 협업을 통한 작품을 완성, 또 한 번 독보적인 색깔의 앨범으로 음악 팬들과 만난 루시드폴은 인터뷰 말미 차기작을 위해 새롭게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식물과의 협업'이라고 밝혔다. 루시드폴은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진귤나무 이파리에 전극을 연결해 모듈러 신스로 받은 신호를 소리로 바꾸는 실험을 해봤어요. 전 세팅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요. (노트북에 저장돼 있는 음원 파일을 들려준 뒤) 아직은 미완성 단계인데 앞으로 좀 더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에요. 계절별로, 기분에 따라서, 혹은 벌이 와서 수정을 했을 때 식물이 내는 소리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보고 있고요. (미소)"

(사진=안테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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