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세연' 성폭력 폭로, 받아쓰기 언론…2018년과 다르지 않다

가로세로연구소, 김건모 성폭력 의혹 폭로 이후 폭로에 폭로 거듭
해당 유튜브 채널 방송 정지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제기돼
대다수 언론, 가로세로연구소 김건모 폭로 등 인용 보도
구체적 피해 사실 묘사에 'OO女'까지…언론 '2차 가해' 논란
'피해女' '피해 주장女' '고소女', '술집女' 등 다양한 여성 혐오 표현까지 등장

(사진=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화면캡처)
성폭력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OO녀(女)'로 표현되는 피해 여성. 김건모 성폭력 의혹을 다루는 언론들의 기사에서 선정성과 성차별적 시선이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서지현 검사가 조직 내 고위 관계자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내용을 폭로한 것은 '미투(#MeToo·나도 성폭력 피해자다) 운동'의 발화점이 됐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는 물론, 이후 이뤄진 '미투 운동'을 보도하는 언론의 성차별적이고 선정적인 시선이 문제가 되며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2018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한국기자협회·여성가족부·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에 따르면 서지현 검사의 미투 운동 당시 언론은 △피해자를 부각한 보도 제목 △피해자 외모 평가 등 2차 피해 △피해 당시 즉각 항의하지 않은 것이 잘못인 듯이 질문 △피해 당시 상황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무비판적으로 보도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 폭로에 폭로 거듭하는 상황에 방송 정지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지난해 이미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선정성과 무비판적 보도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2020년을 눈앞에 둔 지금에도 그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 등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지난 6일 가수 김건모의 성폭력 의혹을 보도했다. 이후 또 다른 성폭력 의혹을 연이어 폭로하며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수의 언론도 가로세로연구소의 방송을 인용해 성폭력 의혹을 보도하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관련자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로세로연구소의 성폭력 폭로는 성폭력을 다루는 방식의 선정성은 물론 어느새 폭로를 위한 폭로의 모양새를 띠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가수 김건모에 대한 성폭력 의혹 폭로 이후 잇따른 폭로에 애꿎은 인물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폭로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 유튜브 방송 정지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신문방송학과)는 23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이 일반적으로 그 많은 피해자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특정한 상황을 보도하는 것은 당사자의 부인도 있지만, 그것이 정당한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지 않을 때 압박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며 "충분히 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모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님에도 선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한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필요한 최소한의 보도를 하는 게 맞는데, 가로세로연구소는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방송하고 있다"며 "가로세로연구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래 갖고 있던 사회적 지위로부터 멀어졌다. 가로세로연구소가 그걸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고 생각하고, 주목받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 윤여진 상임이사는 "언론기관도 아니고 공증받은 곳도 아닌 유튜브에서 마치 방송 보도처럼 객관성이나 공정성, 진실성에 대한 판단이나 검증 없이 한 방송도 문제고, 이를 가지고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일단 보도형식 면에서 유튜브를 어떤 식으로 규제할 것인지 등 계속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진='2018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 캡처)
◇ 구체적 피해 사실 묘사에 'OO女'까지…무책임한 언론의 '2차 가해'

가로세로연구소의 폭로도 문제지만 이를 전달하는 언론 역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로세로연구소의 방송 내용을 여과 없이 고스란히 전달하며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예술계 종사자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방송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피해를 알렸다. '2018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는 당시 생방송을 통해 피해를 구체적이고 충격적으로 보도돼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인터넷 언론이 피해만을 부각한 선정적 기사를 쏟아내면서 피해가 가십성 이슈로 소모됐다고 비판했다.

이번 김건모 성폭력 의혹 보도 역시 2018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언급한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언론 역시 그대로 전달하는가 하면, 성폭력 피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피해 여성의 직업을 언급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한 성차별적이면서 혐오적인 표현이라며 보도마다 지적되는 이른바 'OO녀(女)' 제목 달기도 여전하다. 이번 김건모 성폭력 폭로를 기사화하는 언론에서도 '피해女', '피해 주장女', '고소女', '술집女' 등 다양한 '○○女'가 등장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김건모 OO女'로 검색된 기사는 약 43건(2019년 12월 23일 오후 16시 기준, 2019년 12월 6일~23일까지 검색)이 나타났다.

언론 보도 속 고소녀, 무죄녀, 유죄녀 등 다양한 '○○女'는 여성을 향한 우리 사회의 혐오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성폭력 내지 살인 피해자에게도 언론은 '노래방 살인녀', '화장실녀' 등 '○○女'를 붙인다. 그러나 '○○女' 표현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물론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를 호기심 거리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2018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는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권리침해 그 자체이며, 가해행위에 대한 세부 묘사는 사건 이해에 불필요하다"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는 피해자의 문제 제기보다 피해 내용에 호기심을 유발하게 하고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폭로가 아니면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니게 만드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2년 마련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서도 언론은 성폭력 사건의 이해와 상관없는 범죄의 수법과 과정, 양태,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의 현장 검증 등 수사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도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서중 교수는 "이 사안을 선정적으로 느끼도록 무슨 스캔들 보듯이 이야기한다든가 피해 사실을 묘사하는 것들은 다 불필요하다"며 "가로세로연구소는 주목받고 싶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기존 언론도 사실 비슷한 논리가 작용한다. 이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삿거리를 발견했을 때 우리나라 언론이 이게 저널리즘 보도의 원칙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안이냐 아니냐 하는 점으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여진 상임이사는 "유튜브의 방송과 별개로 언론이 이것을 그대로 보도를 인용해서 할 때 검증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취재한 게 없다"며 "보도하는 형식의 문제도 있지만, 보도 내용에서도 피해자 신상 노출 위험이나 피해자를 '고소녀'로 묘사하며 진위와 상관없이 낙인을 찍는 등 언론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보도를 하는 건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캡처)
◇ 언론의 잘못된 관행의 고리 끊어내야…언론의 자정 노력 등 필요

성폭력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가능한 보도다. 그러나 문제는 의혹 제기를 하는 목적이 의혹 제기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서중 교수는 "이러한 보도행태가 지속되면 다른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폭로했을 때 그 사안을 다루는 방식이 비슷한 관행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일부 언론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서 다른 피해자가 2차 피해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언론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주요 언론들이 잘못된 보도 관행의 고리를 끊어내고 모범적 사례를 만드는 게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부도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언론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바람직한 언론으로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사회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여진 상임이사는 "언론에 일종의 당근을 주는 시스템 만들어보자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전수조사해서 잘못된 보도를 하지 않은 언론이 어딘지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언론 내부에서 자정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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