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3일 오전(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북미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날 한중 정상회담은 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내놓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며 '연말시한'을 정해놓고 연일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이는 북한에 보내는 올해 마지막 공식 메시지가 될 전망이다.
지난 16일 러시아와 함께 남북간 철도·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한 중국은 북한 입장에서는 전통 우방인 동시에 강력한 '뒷배'다.
이날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최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에 이르러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한중은 북미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나가게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에 일관된 지지를 보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역시 "북미 대화가 중단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최근 상황은 우리 양국은 물론, 북한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다"며 "모처럼 얻은 기회가 결실로 이어지도록 더욱 긴밀히 협력해가길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이 북미 대화 모멘텀 유지가 중요하다고 합의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비핵화 대화 '판' 자체가 깨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어렵사리 조성된 남북, 북미 대화 국면이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이견(異見)을 좁히지 못해 지난 2017년 상황으로 되돌아 가는 것 자체가 동북아 긴장 수위를 높인다고 한중 정상은 판단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당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반복하며 핵보유 강성 대국을 표방했던 북한을 제어하지 못했던 만큼, 북미 대화가 궤도를 이탈하고 북한이 다시 강경 일변도로 돌아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 셈이다.
이날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러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의 반응도 주목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현지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리 정부도 결의안을 주목하고 있다"며 "한반도 안보가 굉장히 엄중한 시점에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싱가포르 합의 사항이 북미 간에 동시적·병행적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데 저희도 공감한다"며 "앞으로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 하에 북미 대화의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는 입장 정도로 봐달라"고 덧붙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 틀 자체를 무너뜨릴 수 없는 만큼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지만,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주목한다", "북미간 동시적·병행적 합의 이행" 등을 언급한 대목이 두드러진다.
북한이 연말 도발을 자제한다면 완전한 비핵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일정 정도의 '당근'이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향적으로 대북 상응조치 검토에 들어간다면 북미가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견해차를 극복하고 대화 모멘텀을 이어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다만 미국이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완화 요구 결의안 초안에 대해 안보리 차원의 기존 제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