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적당히 작은' 공연장인 <클럽 헤비>(이하 헤비)를 운영하는 신은숙 대표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정기 힙합 공연 <힙합트레인>의 출발점에 관해 묻자 시계추를 1996년으로 돌렸다.
"힙합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록 음악만 들었던 사람이고 <헤비> 역시 주로 인디 밴드들이 공연하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록 공연장과 힙합이 맞을까' '과연 관객은 올까' 하면서 고민을 좀 했죠. 하지만 기회를 한 번 주고, 저 스스로도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만 해도 힙합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없었으니까요"
<힙합트레인>은 그렇게 시작됐다. 신 대표는 미국의 알앤비, 소울 음악 TV 프로그램인 '소울 트레인'에서 착안해 공연 타이틀을 <힙합트레인>으로 정하고 '무대가 고팠던' 힙합 뮤지션들을 위한 판을 깔아줬다.
"지금은 연례행사처럼 됐지만 초창기에는 월 1~2회 정도 열렸을 정도로 공연이 자주 진행됐어요. 하지만, 관객이 많진 않았죠. 관객 100명이 넘기 전까지 입장료를 3천원만 받기로 했는데 꽤 오랫동안 입장료가 그대로였고요. 하하"
"'힙합 공연' 하면 파티 분위기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때였어요. 실제로 초창기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를 생각하고 옷을 반만 걸친 채 공연장을 찾는 여성 분들이 많기도 했는데, (웃음). 점차 순수하게 힙합 공연을 즐기기 위해 오신 관객 분들이 많아졌죠"
<힙합트레인>은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며 대구를 넘어 서울의 신촌과 홍대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한국의 힙합 문화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힙합트레인>을 거쳐 간 친구들이 정말 많죠. 지금은 정말 유명한 래퍼가 된 이센스도 그 중 한 명이고요. 교복을 입고 <헤비>를 찾아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미소). 아, <힙합트레인>이 '빵' 하고 터졌던 시기인 2003년에 '인 다 헤비'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기도 했어요. 이센스도 그 앨범에 참여했는데, 이센스가 녹음을 한 첫 앨범으로 팬들에게 알려지면서 중고 CD가 인터넷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힙합트레인>이 시작된 이후 1~2년 뒤쯤 막내 멤버로 합류했던 마이노스가 서울 힙합씬으로 진출한 뒤로 출연진이 다양해졌어요. 초창기까지만 해도 출연진이 모두 대구 출신 래퍼들이었는데 발이 넓은 마이노스 덕분에 서울, 부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이 <힙합트레인> 무대에 오르게 됐죠. 마이노스는 지금까지도 직업 라인업을 짜고 섭외를 담당해 주고 있어요. <헤비>를 자기 집처럼 아끼는 마이노스가 없었다면 <힙합트레인>은 20년간 이어질 수 없었을 거예요"
"1999년 시작된 공연이 어느덧 스무 살이 됐죠. 사실 <헤비>가 밴드 공연 위주로 돌아가는 곳이다 보니 <힙합트레인> 20주년 대해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3번의 20주년 공연을 하면서 <헤비>에게 정말 소중한 큰 아들 같은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어요. 클럽 공연 문화를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도 <힙합트레인>애 대해 알 수 있도록 홍보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구에도 래퍼들이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공연장이 많아졌고 규모가 큰 힙합 공연도 자주 열리지만, 눈앞에서 래퍼들의 숨결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힙합트레인>만의 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헤비>는 대구 힙합을 넘어 '대구 인디 음악의 성지'로 통한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알바생'으로 출발해 어느덧 23년째 <헤비>를 지키고 있는 신 대표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며 공연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과 추억을 쌓아갈 계획이다.
"내년 1월에는 <헤비>가 처음으로 한 달간 문을 닫아요. 건물주가 바뀌면서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거든요. <헤비>의 최대 약점이 열악한 화장실 환경이었는데, 휴식기가 끝나면 깨끗하게 바뀌어있지 않을까 해요. 다시 문을 열면 공연 문화를 즐기는 분들이 지금보다 많아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에요. 아, 마지막으로 지난 20년간 <힙합트레인>을 사랑해주신 분들께는 '앞으로도 의리로 같이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