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아올려지는 진실 속 결핍 '엘리펀트 송'

[노컷 리뷰] 연극 '엘리펀트 송'(2019, 연출 김지호)

연극 ‘엘리펀트 송’ (사진=나인스토리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도무지 알 수 없는, '코끼리' 인형을 소중하다는 듯이 품에 안고 끊임없이 '코끼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 남자가 있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격한 톤으로 코끼리와 실종된 정신과 의사,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무심코 넘긴 한 남자의 말은 나중에 차곡차곡 끼워 맞춰지며 오롯이 '한 남자'의 아픔과 슬픔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연극 '엘리펀트 송'은 정신과 의사 로렌스 박사의 실종 사건을 둘러싸고 병원장 그린버그, 마지막 목격자인 환자 마이클과 그의 담당 수간호사 피터슨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극을 팽팽하게 그려낸다.

캐나다 작가 니콜라스 빌런의 데뷔작으로 2004년 캐나다 스트랫퍼드 축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됐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극장에서 100회가 넘게 무대에 올랐으며, 프랑스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몰리에르 어워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연극은 로렌스 박사의 실종 사건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간의 변화 없이 오롯이 세 명의 등장인물인 마이클과 병원장 그린버그, 마이클의 담당 간호사 피터슨의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등장인물의 말과 심리가 관객들에게 긴장을 선사하는 구조다. 그만큼 온전히 인물들의 말과 연기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의 말과 조명, 그리고 음악을 통해 극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화는 로렌스 박사 실종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전개된다.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의 실종과 각자 속내를 감춘 듯한 세 명의 인물,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자연스레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분위기가 깔리게 된다. '알 수 없음'이란 물음표가 연극 곳곳에 깔린 채로 우리는 그저 세 명의, 특히 마이클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마이클의 말속에서 진실은 무엇이며, 왜 그는 저토록 '코끼리'에 집착하는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마이클은 초반부터 그린버그에게 코끼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묻고, 하얀 코끼리, 존재 이유, 견과류 알레르기라는 말을 툭툭 내뱉는다. 또한 마이클은 처음부터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상한 코끼리 이야기와 마이클이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라는 점 때문에 그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연극 ‘엘리펀트 송’ (사진=나인스토리 제공)
그러나 연극이 흘러가며 막바지에 다다르면, 마이클을 조심하라는 피터슨의 말, 그리고 마이클이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뱉어낸 말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다. 그리고 그 완성된 퍼즐은 마이클의 '죽음'이다.

로렌스 박사의 실종을 이용해 마이클은 자신만의 '자유'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으며 생긴 사랑에 대한 결핍과 '죽음'이란 현실을 맞닥뜨리며 얻은 슬픔과 고통이 있다. 그런 마이클의 진실과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들은 반전과도 같은 페이소스를 진하게 느끼게 된다.

마이클의 죽음 직전 울려 퍼지는 푸치니의 유일한 희극 오페라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 중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 그리고 로렌스 박사와의 마지막 통화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랑과 그 결핍을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도록 한다.

연극은 다소 불친절한 편이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보다 마이클이 마지막을 향해 내달리는 과정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생략된 많은 서사와 과정에 관객들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이는 아마도 마이클이라는 인물의 심리와 그의 말속 행간의 의미를 곱씹어 보도록 함일 수도 있다. 마이클에게 관객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말이다.

동명 영화에서 극 중 마이클은 '코끼리 ​한 마리 기다란 코(trompe) 기다란 코'라는 노래를 부른다. 프랑스어 trompe는 명사로 '코'를 뜻하지만, 동사 tromper로 쓰이면 '속이다'란 뜻이 된다. 마이클이 교묘하게 자신의 진실을 대범하게 드러내는 한편, 진심을 가리며 말했음을 알 수 있는 단서다.

연극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면 지난 2014년 자비에 돌란 주연의 영화 '엘리펀트 송'을 추천한다. 연극의 각본을 맡은 작가 니콜라스 빌리온이 영화의 각본까지 맡아 영화 역시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며, 동시에 매체 특성상 연극보다 촘촘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또한 연극과 다른 점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연극 '엘리펀트 송'(The Elephant Song, 2019, 연출 김지호) 90분, 만 13세 이상, 2019년 11월 22일~2020년 2월 2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3관(구 수현재씨어터).
연극 ‘엘리펀트 송’ (사진=나인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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