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은 상업영화나 드라마에는 자주 출연하지 않아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리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던 게 사실이다. 그는 데뷔하고 나서 단역이나 비중이 작은 조연 등으로 출연할 때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어색한 상황에서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그때 당시의 꿈이자 바람이 어디 가서 내 소개를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각지도 못했을 때 아는 척을 해 준 선배 배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참고로 이번 '시동'(감독 최정열)에서는 장풍반점 주인 공사장 역을 맡은 김종수가 나서서 화합의 자리를 자주 만들었다고.
◇ 많이 의지한 마동석, 큰 사랑 준 염정아, 아우라 느낀 고두심
박정민은 '시동'에서 거석이 형 역할을 연기한 마동석과 처음 만났다. 박정민은 "언젠가는 꼭 같이, 같은 영화에 나와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워낙 거석이 형이라는 캐릭터랑 선배님이랑 너무 잘 맞아서 기대를 많이 했다.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너무 안도감이 들었고, 촬영하면서도 의지를 많이 했다. 너무 아껴주셔서 저도 잘 따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밝혔다.
박정민은 그동안 자주 해 보지 않은 코믹 연기를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던 덕도 마동석에게 돌렸다. 그는 "제가 코미디 연기를 많이 해 본 배우가 아니라서 걱정도 됐다. 그래서 동석 선배님이랑 처음 촬영한 날 저녁에 감독님께 찾아갔다. 제가 앞으로 이런 식으로 연기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동석 선배님이 너무 재밌는 걸 잘하시니까 제가 잘 맞춰드려야 재미가 배가되겠더라.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있게 찍었다"라고 부연했다.
아예 대놓고 웃긴 코미디도 해 보고 싶은지 묻자, 박정민은 "해 보고는 싶다"면서도 "잘 맞아야 하니까… ('시동'은) 동석 선배님이 계셔서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동석 선배님이 없었으면 쫄았을 거다. 제가 뭘 하든 어떻게든 웃겨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믿고 간 게 있었다"라고 말했다.
택일 엄마 역을 맡은 염정아와도 처음 같이 연기해 봤다. 박정민은 "선배님이 리딩 날 제 옆에 앉으셨는데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저도 너무 감사했고 금방 친해졌다. (염정아는) 표현에 인색하지 않으시다. '정민이 이뻐죽겠다'고 하셨는데, 쉽게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지 않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연기할 때도 더 편했다"라며 고마워했다.
박정민은 "무슨 말을 해도 건방진 말이 될 거 같아서 조심스러운데 정말 현장에서 제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느낌을 주셨다. 후배가 연기하는 데 있어서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게 끌어주신 것만으로도 제가 너무 감사했다. 선배님은 (자기가) 걸리지 않는 커트에서도 대사 쳐줄 것도 없는데 옆에 와서 앉아계셨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루 말할 수가 없다"라고 부연했다.
같이 찍는 분량이 거의 없어서 촬영 현장에서는 한 번 만났다. 박정민은 "뭔가, 하수들은 따라가지 못하는 어떤 아우라 같은 게 있으시더라. 연기할 때 나오는 내공, 내공이란 말도 (제가 하기엔) 굉장히 건방진 말인데 아무튼 해인이가 선생님이랑 (연기) 할 때 어땠는지 되게 궁금했다. 고두심 선생님은 리딩부터 이미 준비가 되어계신 느낌이었다. 어떤 안정감 같은 게 너무 좋았다"라고 부연했다.
박정민은 "그 역할(상필 할머니)을 고두심 선생님께서 해 주신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 (김)민재 형이 해 준대, 박해준 선배님, 윤경호 선배님 나오신대 할 때도 놀랐지만 고두심 선생님 때 제일 놀랐다. 다들 굵직한 역할을 하고 다 주연급 배우분들인데도 몇 회차 안 나오는 이 역할들을 해 주신다는 걸 듣고 너무 놀라고 감사했다. 이게 무슨 복인가. 감독님도 정말 좋으시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대본이 가장 먼저이지 않았을까. 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때문도 있었는데, 감독님, 동석 선배님 비롯한 배우님들, 제작사도 그렇고 많은 증명과 신뢰를 보여주신 분들이 영화를 만드는 거니까 선배님들도 동참해주신 게 아닌가 한다"라고 덧붙였다.
◇ 정해인과의 신기한 인연
박정민은 극중 단짝 절친으로 나오는 정해인과의 신기한 인연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해인이 연기 지망생일 시절, 겹치는 지인을 통해 전화한 적이 있었다고. 자신의 데뷔작 '파수꾼'을 너무 잘 봤다며 언젠가 너무 뵙고 싶다고 했던 그 통화를 박정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분당 수서로를 운전하고 있었던 것까지도.
박정민은 "'파수꾼' 잘 봤다고 꼭 뵙고 싶다고 해서 고마웠다. 그때 저도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이름을 제가 기억하고 있었다"라며 "나중에 '임금님의 사건수첩' 우정출연하러 갔을 때 해인이 나오는 거 보고 '이 친구 그때 그 친구인 것 같은데?' 했다. 그때 해인이가 얘기했던 '다음에 꼭 만나뵙고 싶습니다'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뤄진 거다"라고 설명했다.
정해인은 박정민이 씬을 풍성하게 하는 애드리브를 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이를 언급하자 박정민은 "제가 무슨 씬을 풍성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해인이가 다음 행동이나 대사를 할 수 있게 어떤 걸 만들어줘야 하는 책임 같은 게 있었다. 상대 배우로서. 그런 것들을 한 거다. 저도 모자라다. (부족한 건) 감독님이 풍성하게 만들어주시는 거고"라며 웃었다.
박정민은 "종수 선배님도 옛날에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가 말 걸어주고 밥 먹자고 해 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후배들에게 똑같이 해 주신 게 아닐까. 저희도 감사해서 급속도로 사이가 엄청 좋아졌다. 촬영 현장 가도 너무 좋았다"라고 말했다.
◇ 아무도 나를 모르던 시절 품었던 꿈, 지금의 목표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이제는 촬영 현장이 제법 익숙해졌으나, 박정민도 '아무도 자기를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혼자여서 어색하고 불편해도 그걸 뒤로 하고 카메라 앞에서 뻔뻔하게 연기해야 하는데 제대로 못 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초라해지는 기분도 들었고.
박정민은 "전 그때 당시에, 정말 헛된 꿈일지도 모르는데, 치기 어린 희망이자 바람은 '내가 어디 가서 내 소개를 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얘는 누군데 왜 인사하지?' 하는 게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안녕하세요, 박정민입니다' 하면 '어~ 잘 보고 있어요' 이 말이 너무 듣고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박정민은 MBC '골든타임'에 출연했을 때 일화를 들려줬다. 이선균, 이성민이 대기하던 자신에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박정민은 "제가 인사하니 이선균 선배님, 이성민 선배님이 '어, 정민이~' 해 주시는데 그 현장에서 받았던 그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께서 제 이름을 먼저 불러주셨을 땐 정말, 진짜 감동적이다. 그때 두 분을 보면서 벅찬 감정 같은 게 올라오더라. 성민 선배님하고도 큰 왕래나 교류는 없었는데 차이무라는 극단에서 뵌 적은 있다. 그때 제가 박카스 광고 나올 때였는데 '박카스 여기 있었네?' 하고 아는 척해 주신 걸 아직도 못 잊는다"라고 밝혔다.
이제는 '잘 보고 있어요'라는 말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꿈이나 목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박정민은 "저도 꿈이 그렇게 막 원대하지는 않다. 그냥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은 것뿐이다. 영화 하시는 분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저 친구는 묵묵히 자기 몫을 하는 느낌이 든다'라고 해 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 사실 작은 바람은 아니고 큰 바람인 것 같다. 그게 지금 저라는 배우의 화두"라고 답했다.
이어,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늘 자기 몫을 하면서도 크게 엇나가지 않고 한국영화계 안에서 잘하는 선배님들이 많으시지 않나.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과거 인터뷰에서 연출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 박정민. 지금은 연출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편영화 정도는 생각이 있는데 선배님들처럼 상업영화 연출은 전혀… 이 일(연기)이나 잘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온다면? 그래도 안 한단다. "배우나 잘하면 그게 행복한 일이죠." (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