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아 연기한 박정민 "그래도 공부하지 말란 말은 못 하겠어요"

[노컷 인터뷰] 영화 '시동' 택일 역 박정민 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시동' 택일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을 만났다. (사진=NEW 제공)
박정민이라는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박정민 학력'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그는 기숙사가 딸린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들어갔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부모에게 표현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 꽤나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

그런 그가 신작 '시동'(감독 최정열)에서 맡은 택일은 공부에는 도통 흥미가 없고 학교도 그만둔 고등학생이다. 현실의 박정민은 고등학생 때 착실하게 학교에 다녔지만, 엄마 속을 끓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택일과 닮은 점이 있다. '시동'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여러 인터뷰에서 택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고 직접 밝힌 이유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박정민을 만났다. 일탈하는 10대 소년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겪어내는 이야기이다 보니, 자연히 배우 본인의 10대 시절이 자주 소환됐다. 지금의 10대들에게 공부하지 말란 말은 못 하겠다는 그는, 만약 열여덟 살로 돌아간다면 연애를 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 결핍된, 표현이 서툰, 그래도 애는 착한 택일

박정민은 '시동'을 만든 외유내강의 전작 '사바하'에서 주인공 정나한 역을 맡았다. 영화를 준비할 때, 제작사에서 조금산 작가의 원작 웹툰을 박정민에게 보여줬다. 재미있는지 없는지 봐달라는 차원에서. 이후 나온 시나리오를 보고서도 박정민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시동'의 두 반항아 중 한 명인 택일 역에 캐스팅됐다.

택일은 살짝 볶은 밝은 노란색 머리가 눈에 띄는 캐릭터다. 박정민은 "그러고 돌아다니는 게 힘들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눈살을 찌푸리면서 쳐다보니까"라며 "그 머리를 하고 어디 공식적인 행사를 간다든가 사진 찍어야 할 때 곤란했다"라고 말했다.

덜덜거리는 중고 오토바이를 모는 것으로 시작하는 택일은 우연히 내려간 군산에서 중국집 배달부가 된다. 자신들을 도발하는 능숙한 오토바이족을 따라가느라 펼쳐지는 추격전은 충무로, 구로, 춘천 등지에서 찍었다. 터널이 나오는 장면이 춘천이라고.

박정민은 스무 살 때 신문 배달을 해 봐서 실제로 시티백(오토바이의 종류)은 탈 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시티백으로 배워서 몇 번 타 보니까 그때 감각이 돌아오더라. 신문 배달할 땐 기어를 계속 바꿔줘야 하는데, (중국집 배달은) 그러지 않아서 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평소에도 스쿠터 잘 타고 다녀서 (오토바이 연기에) 부담은 없었다. 잘 탄다. 어머니가 싫어하시지만"이라며 웃었다.


택일 캐릭터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묻자, 박정민은 "'아무 생각이 없는 친구구나', 거기서 오는 이 인물의 어떤 순수함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마음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여있는 인물 같았다. 생각이 없다 보니까 표현을 잘 못 하고. 꽤 많은 결핍이 있고, 거기서 오는 감정이 그냥 복잡하게 쌓인, 정리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라고 말했다.

박정민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어설픈 반항아 택일 역을 연기했다. 탈색한 노란 머리가 눈에 띈다. (사진=외유내강 제공)
이어, "만화(웹툰) 볼 때도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만화의 그림체라고 해야 하나. 만화를 지배하는 분위기도 되게 쓸쓸했던 그런 것들이 더 많이 느껴졌다. 시나리오 봤을 때도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잘 모셔온(옮겨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좋더라"라고 부연했다.

박정민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냉정하게 평가했지만, 택일은 얼떨결에 사채업에 종사하게 된 절친 상필(정해인 분)에게 빨리 그만두라고 몇 번 말할 정도로 나름의 기준은 있다. 이를 언급하자 박정민은 "기본적으로 애가 착한 것 같기는 하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애는 착하지만 표현이 서툴러서 마음과 다른 말을 하게 되는.

그는 "표현이 조금씩 엇나가는 애인 것 같다"라며 "엄마(염정아 분)한테 하는 대사가 추가된 게 있는데 거기엔 감독님 의도가 들어갔던 것 같다. 저는 너무 (엄마를) 위하는 것처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영화가 가져가야 하는 톤이나 메시지 때문에 여기서는 택일이가 이런 마음을 조금 더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월급봉투 주러 왔을 때 '나 신경 쓰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는 대사같이 택일이 마음을 조금씩 보여주기를 감독님이 원하셨고, 저도 그래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라고 설명했다.

◇ 공부를 두고 갈리는 택일과 정혜, 박정민의 선택은

택일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다. 박정민은 "조금산 작가님이 그렇게 그리셨다. (공부를) 극도로 하기 싫어하는 애들이 있지 않나. 얘는 그냥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은 애다. 자기 하고 싶은 게 있고 주관이 엄청 뚜렷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극중 택일과 택일 엄마 정혜가 가장 부딪히는 게 바로 공부다. 정혜는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냐며 대학에 가야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졸업 때까지는 어떻게든 뒷바라지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때 택일은 자기 때문에 엄마 인생 포기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한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택일의 입장이긴 한데, 그냥 제 주변 친구들 지켜본 결과 공부 열심히 했던 애들이 그래도 잘 살긴 잘 살더라고요. 그래서 공부하지 말라고 말은 못 하겠어요. 근데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한다는 건 인내력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인내력 싸움을 잘한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는 거잖아요. 그 친구들이 나중에 대학 가서도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극복해나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공부를 하지 말라고는 못 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공부 잘한다고 인생이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는 좀 열심히 해 놓는 게… 혹시나 스무 살 초반에 갑자기 변호사가 되고 싶은데 공부를 (그동안) 하나도 못 했으면 될 수가 없잖아요. 공부해 놓으면 기회는 있으니까요. 저도 공부하기를 너무 싫어했던 학생이라서, 공부에 너무 얽매여서 불행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요."

박정민은 "고등학교 때 엄마 속을 꽤나 썩였다. 일탈하려면 진짜 담대해야 한다. (제가 한 건) 사실 일탈이 아니다. 큰 사고를 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한데,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 공부 좀 그만하고 영화감독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사이가 안 좋아졌다. 기숙사 학교에 다녀서 가출할 수는 없었고, 학교에서 많이 뛰쳐나간 것 때문에 (부모님) 속이 많이 썩었다"라고 밝혔다.

박정민은 "저도 그런 생각을 한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내가 중학교 때 독서실만 다니고 엄마 말만 잘 들을 게 아니라, 싸움질도 해 보고 담배도 피워봤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좋은 배우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라며 "(일이) 안 풀릴 때 내가 (예전에) 그래 봤으면 좀 더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가끔 생각했다. 예전엔 엄마가 미웠는데 조금씩 겪어보니까 (그때)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더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10대로 돌아간다면 연애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10대 땐 연애를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택일은 만 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군산에 가고, 장풍반점에서 일하게 된다. 택일에게 장풍반점 사람들은 유사 가족 역할을 한다. (사진=외유내강 제공)
◇ 10대 연기, 처음엔 민망하고 송구했지만

1987년생인 박정민은 서른셋이다. 1988년생으로 서른둘인 정해인과 같이 열여덟 반항아를 연기했다. 10대를 연기한 소감을 물었더니 박정민은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송구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것도 너무 예전 얘기여서 부끄럽긴 하지만, '파수꾼'(2011) 때 감독님이 실제 고등학생보다는 그 시기를 겪고 난 배우가 표현하는 게 훨씬 더 풍성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성인을 캐스팅하셨다고 하셨고, 저도 그 말씀에 동의했어요. ('시동'은) 시나리오 보면서 마음이 움직인 것도 있고, 아는 감정도 있어서 이걸 내가 잘 표현하면 되겠지 싶었어요. 감독님한테 저도 여러 번 여쭤봤어요. 괜찮으시겠냐, 아직 늦지 않았다고. (웃음) 다행히 (호흡을 맞춘) 해인이도 한참 어린 후배가 아니라서 밀고 나가보자고 했죠."

택일은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게 싫어 무작정 집을 나와 장풍반점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게 된다. 장풍반점의 사람들은 택일에게 유사 가족과 같은 안정감을 준다. 박정민은 "그러니까 얘한테 가장 필요했던 건 관심이었던 것 같다, 관심. 엄마마저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아서 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사고 치는, 공부는 너무 하기 싫은 애였던 것 같다. 장풍반점은 (택일이) 처음으로 따뜻한 관심을 받아본 공간이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군산에서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경주(최성은 분)를 두고는 "내가 관심을 보여줘야 하는 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영화에서는 잘 표현이 안 됐는데 (택일이) 경주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본다. 시나리오엔 그렇게 돼 있었는데 그건 들어냈다. 택일에게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절친한 단짝 상필에 관해서는 "그냥 제일 친구. 유일하게 소통하는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큰 사건은 아니어도 사람들을 만나고 일들을 겪어요. 제가 사실 좋았던 건 (택일이) 그렇게 큰 성장을 이루진 않은 것 같다는 거였어요. 좀 변한 것 같긴 한데 며칠 이따가 오토바이 타고 다닐 거 같아서 조금 더 현실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엄마한테 그런 말들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는 얘가 어쨌든 뭔가 변화가 조금 있다는 건데, 그렇다고 검정고시 보고 대학 갈 것 같진 않았거든요."

◇ '네가 뭘 하든 괜찮다'고 말하는 영화

박정민은 '시동' 명확한 해답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해답이 나오겠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다만 '네가 뭘 하든 괜찮다'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죠. 비슷한 얘기일 수 있는데 네가 뭘 하든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 세상이 변하건 안 변하건 지금 네가 살아왔던 게 크게 잘못한 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거 같아서 그게 전 좋았어요.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고, (극중 인물이) 다들 부족한 사람이라서 뭔가를 정확히 말 해 주는 사람이 안 나오는 게 좋았어요. 세상은 변하기 쉽지 않죠. 변한다고 해도 더 안 좋게 변할 가능성이 크고요. '사바하' 때 (이)정재 선배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있어요. 선배님은 영화를 오래 해 온 기성세대 입장에서 지지고 볶고 뭔가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니까, 너희 세대는 하고 싶은 걸 맘껏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감동적이었어요. 뭘 선택할 때 용기가 나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이 이렇게 얘기해준다는 게… 저도 언젠가 선배가 된다면 이런 말해주는 선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선배들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후배들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순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근데 이건 영화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에서 대입 가능한 말인 것 같아요." <계속>

배우 박정민 (사진=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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